[이정훈의 크립토네이션] 무섭게 진화하는 비트코인 ETF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04일, 오후 05:25

[이데일리 이정훈 디지털자산센터장] 작년 10월 역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비트코인은 이후 지속적인 침체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강한 하방 경직성을 보이며 꾸역꾸역 저점을 높여가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반등의 동력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입니다. 쏟아지는 뉴스 플로우에 일희일비하는 개인투자자들과 달리, 기관투자가 중심의 ETF 자금 유입세는 시장을 안정시키는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현재 미국 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총운용자산(AUM)규모는 산업은 이미 1027억달러(원화 약 152조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초에 기록했던 1650억달러의 사상 최대치를 아직 회복하진 못했지만, 2024년 1월 처음 거래가 시작된 이래 2년 남짓한 기간에 이뤄낸 성과는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겠지요. 특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운용하는 대표 비트코인 현물 ETF인 ‘IBIT’는 벌써 AUM이 639억달러(원화 약 94조원)나 돼 모든 기초자산군을 통틀어 가장 성공한 ETF가 되고 있습니다.

어디 양적 성장뿐이겠습니까. 질적 성장도 수반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시장을 눈엣가시처럼 바라보던 월가 터줏대감들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등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 모건스탠리는 ‘MSBT’라는 ETF를 출시하면서 기존 블랙록의 IBIT 절반 수준의 보수로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있구요. 골드만삭스는 옵션 전략을 활용해 ETF에 돈만 넣어두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해주는 안정지향적 상품을 인가 신청했고, 유사한 인컴형 상품을 블랙록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무섭게 진화하고 있는 비트코인 ETF시장은 비트코인 투자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놓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이제 더 이상 ‘맹목적인 신념을 가지고 투자한 뒤 가격 상승만을 바라보고 있는’ 투기적인 자산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겁니다. 적당한 리스크를 감내하면서 시장 평균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거나, 리스크를 크게 낮추면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투자자산이 되고 있고, 이런 변화가 비트코인 변동성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추고 있는 겁니다. 한 마디로 시장이 성숙단계에 접어들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상이, 금융산업에 관한 한 그 어느 국가보다도 보수적인 이웃나라 일본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겠죠. 일본 금융당국은 2028년을 목표로 그 때까지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상장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 최대 도쿄증권거래소를 운영하고 있는 일본거래소그룹(JPX)의 야마지 히로미 최고경영자(CEO)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자산운용사들이 가상자산 현물 ETF 상품 출시에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법률과 세제 처리가 명확해지는 즉시 관련 작업에 착수할 준비가 돼 있으며, 이르면 2027년 중에 상장시킬 것”이라며 당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미국 거래소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 총자산규모(AUM) 추이
사실 올 연초만 해도 국내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1월9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대회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던 이재명 대통령을 앞에 두고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을 (연내)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미국보다 많이 늦긴 했어도, 국내 투자자들의 가상자산 선호나 ETF시장 성장세 등을 감안할 때 성공 가능성이 높다며 금융투자회사들은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 추진’이라는 그 약속이 어느 지점까지 와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현재 우리 자본시장법 제4조에 규정돼 있는 기초자산은 △금융투자상품 △국내외 통화 △일반상품(농산물·축산물·수산물·임산물·광산물·에너지 등) 정도입니다.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을 금융투자상품으로도, 일반상품으로도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현행 자본시장법대로라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현물 ETF는 국내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 상품입니다. 결국 기초자산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는 한편 신탁업자가 가상자산도 수탁 및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해야만 가능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기초자산을 기반으로 한 ETF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펀드 설정부터 운용, 수탁, 평가 등 세부적으로 뒤따라야할 사안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국내에선 지난 2017년 도입된 금가분리(전통금융과 가상자산 간 분리) 원칙으로 인해 각 사업자에 대한 법적 근거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본시장법 하나 고친다고 해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뚝딱 만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현재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가 논의의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있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상에 가상자산 매매와 중개, 수탁 및 관리 등 관련 업종을 세분화하고, 분야별로 인가 체계를 마련하는 게 전제돼야 합니다. 결국 디지털자산기본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이 한묶음으로 정무위에서 이뤄져야 하는 겁니다. 그밖에도 가상자산 가격과 지수 산정이나 유동성 공급 구조, 시장 충격 없이 ETF 운용사가 가상자산을 대규모로 매입할 수 있는 장외거래(OTC) 시스템 구축 등 법 이외 제도적 준비 사항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금융위는 전혀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물론이고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국회 논의에 모든 걸 미뤄둔 채 정부부처안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금융위 역시 “연내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건 구윤철 부총리의 약속과 같습니다만, 그 앞에 전제가 있습니다. “전통 금융시장과 가상자산시장 간 연계에 따른 리스크,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투자자들의 편익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겠다는 전제 말입니다.

실제로 작년 말 쯤 국회에서 있었던 토론회에 참석한 금융위 관계자는 “균형감 있고 효과적인 도입 방안 마련을 위해 논의에 참여하겠다”면서도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국내 증시 자금이 가상자산시장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전통 금융시장과 가상자산이 처음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안정성에 어떤 어떤 영향이 발생할지, 금융회사의 건전성이나 투자자 보호 이슈에 문제가 없을지도 간과할 수 없다”며 당국자로서의 어려움부터 먼저 호소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신중함이 금융당국의 몫이니, 그 관계자의 얘기는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당국의 그런 신중함을 ‘돌다리를 건너지 않을 명분을 만드는 것’으로 시장참가자 대부분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건 당국이 자초한 결과입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과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손 대고 준비할 게 너무나도 많다는 건, 더 신중해야 할 이유라기보다는 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할 이유입니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도입됐을 때 국내 금융시장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고민하는 게 우선돼야 하지만, 도입이 늦어져 국내 금융사들이 경쟁력을 갖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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