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치료제였다"…200년 전 귀족들이 니스를 택한 이유

경제

뉴스1,

2026년 5월 05일, 오전 06:30

프랑스 니스 ©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햇살은 때로 가장 강력한 치료제가 된다. 비타민D를 채우고 마음의 우울감을 걷어내는 이 물리적 에너지는 니스를 찾은 여행자에게 단순한 날씨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겨울의 흔적을 지워낸 채, 오감을 깨우는 찬란한 빛이 도시 곳곳에 쏟아지고 있었다.

지중해의 푸른 심장 니스는 본래 프랑스가 아니었다. 1860년에야 이탈리아 사보이(Savoy) 공국에서 편입된 이곳은 골목마다 이탈리아풍 색채와 프랑스 특유의 세련미가 공존한다. 200여 년 전부터 유럽 귀족들이 '빛의 치료'를 위해 찾던 거대한 요양지였다.

니스 해변을 바라보며 일광욕을 즐기는 여행객들의 모습©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니스 꽃시장 ©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바다는 즐기는 게 아니라 치료하는 약"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즐기는 '관광'(Tourism)의 뿌리는 18세기 영국 귀족들의 '그랜드 투어'에 있다. 니스를 힙한 요양지로 만든 일등 공신은 뜻밖에도 스코틀랜드 의사 토비어스 스몰렛이었다.

니콜라스 지오바니 현지 가이드는 "건강이 나빴던 스몰렛 박사가 매일 아침 니스 햇살 아래 해수욕을 즐기며 회복된 기록이 영국 상류층을 움직였다"며 "니스는 영국인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직접 개척한 도시"라고 했다.

오페라 하우스 방향에도 흥미로운 비화가 있다. 지오바니 가이드는 "당시 귀족들에게 바다는 감상의 대상이 아닌 의학적인 약이었다"며 "그래서 오페라 하우스의 화려한 정면은 바다가 아닌 도시 사교계를 향해 지어졌다. 풍경보다 신체적 회복이 먼저였던 시대의 증거"라고 했다.

핑크빛 돔이 시선을 강탈하는 네그레스코 호텔도 니스의 상징이다. 창업주 네그레스쿠가 이탈리아식으로 이름을 고쳐 지었다.

1860년부터 니스 올드타운을 지켜온 최고령 와인숍 '카브 비앙키'©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4.5시간의 외줄 타기"…니스 로제 와인의 비밀
남프랑스 햇살 아래 얼음처럼 시원한 로제 와인 한 잔. 현지인들의 일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1860년부터 니스 올드타운을 지켜온 최고령 와인숍 '카브 비앙키'(Cave Bianchi)에 들어서면 이 핑크빛 열기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30년 넘게 운영 중인 프랑크 오바디아 대표는 로제 와인 만드는 과정을 "4.5시간의 외줄 타기"라고 정의했다. 그는 "로제의 섬세한 빛깔과 풍미는 딱 4.5시간의 짧은 침출 과정에서 결정된다"며 "이 타이밍을 놓치면 상품 가치를 잃는 원샷의 작업"이라고 했다.

최고령 와인숍 '카브 비앙키' 내부©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프랑크 오바디아가 진행하는 와인 테이스팅©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오바디아 대표는 전 세계를 휩쓰는 로제 열풍을 '핑크 츠나미'라고 불렀다. 실제로 글로벌 로제 와인 시장은 매년 8% 이상 성장 중이다.

그는 "로제는 신선함이 생명인 연약한 와인"이라며 "품질 보존을 위해 코르크 대신 스크루 캡을 선택했다. 철저히 비즈니스적이고 실용적인 결단"이라고 했다.

매장 맞은편 지하에는 오바디아 대표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 따로 있다. 고대 성 도미니크 수도원이 남긴 크립트(crypt)로, 앤티크 와인병과 낡은 라벨링 기계, 희귀 컬렉션이 가득한 와인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소믈리에가 진행하는 테이스팅 클래스와 프라이빗 이벤트가 열린다.

유머 감각이 남다른 오바디아 대표가 직접 진행하는 테이스팅 클래스는 특히 인기다. 700여 종의 와인 레퍼런스를 보유한 이 공간은 저녁이 되면 타파스와 함께 와인을 즐기는 와인 바로 변신한다.

볼리외쉬르메르 항구©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슈퍼 요트 사이를 가르는 태양광 보트
햇살의 에너지는 바다 위에서 실질적인 동력이 된다. 볼리외쉬르메르 항구에 성채처럼 정박한 수천억 원대 슈퍼 요트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태양광 보트 '시젠'(Seazen). 거대한 디젤 엔진들이 진동과 매연을 뿜을 때, 이 작은 배는 파도가 배를 스치는 소리만 내며 고요하게 물살을 가른다.

기욤 자케 라그레 시젠 대표는 "거대 요트들이 힘과 부를 과시할 때 우리는 바다와의 연결을 선택했다"며 "엔진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갈매기 소리와 파도 소리가 채워지는 순간, 여행자는 지중해의 진면목과 마주하게 된다"고 했다.

태양광 보트를 타고 즐기는 지중해©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보트에서 바라본 니스 ©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1시간에 159유로. 육지의 담벼락에 가려 보이지 않던 명사들의 별장과 에즈 해안 절벽을 바다 정중앙에서 볼 수 있는 독점적인 시야다. "소음 없는 고요함 덕분에 이 배 위에서 수많은 프러포즈가 성사됐다"는 그의 말에 '행운의 배'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에즈 프라고나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장 투어©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해발 427m 절벽 위 향수 명가…프라고나르 창립 100주년의 향기
해발 427m. 지중해가 발밑으로 쏟아질 듯 아찔한 절벽 끝에 매달린 마을 에즈. 이곳의 비현실적인 파노라마 뷰 사이로 남프랑스의 향기를 100년째 병에 담아온 향수 명가 '프라고나르'(Fragonard)가 자리 잡고 있다.

1926년 향수의 수도 그라스에서 시작된 이 브랜드는 니스 출신 로코코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이름을 빌려 탄생했다. 3대째 가족 경영으로 프랑스 향수의 자존심을 지켜온 이곳이 2026년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기념으로 '향기 나는 엽서'를 공개했다.

프라고나르는 3대째 가족 경영으로 프랑스 향수의 자존심을 지켜오고 있다.©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프라고나르 공장투어©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가가문의 시프리앙 파브르는 "향기는 남프랑스의 본질을 포착해 전 세계에 기억을 전달하는 매개체"라며 "여행의 기억을 공유하고 싶을 때 엽서를 쓰듯, 향기로 추억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최고급 에센셜 오일 단 1L를 얻기 위해 꽃 100kg을 증류하는 고된 공정. 프라고나르가 100년간 고집해 온 진짜 가치를 증명하는 숫자"라고도 했다.

공장 투어는 매일 무료로 진행된다. 화장품 실험실부터 증류 공정까지 약 30분간 견학할 수 있다. 여기에 나만의 오드투알렛 12ml를 직접 만드는 퍼퓸 워크숍(45분)은 약 30유로(약 5만 1900원)로 참여할 수 있다. 예약 없이 현장 방문이 가능하고 영어로도 진행된다.

seulbin@news1.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