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乙' K반도체, 선급금+최소 매출 보장 LTA 확대…수주산업 변신

경제

뉴스1,

2026년 5월 07일, 오전 06:50

삼성전자가 30일 1분기 매출 133조8700억원, 영업이익 57조2300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AI 반도체와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DS부문이 실적을 견인했고, 스마트폰 출시로 DX부문 매출도 증가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2026.4.30 © 뉴스1 김진환 기자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선급금과 재무 보증이 포함된 '구속력 강화' 장기공급계약(LTA)을 본격화하며 단순 메모리 판매를 넘어 '수주형 비즈니스'로 산업 구조를 전환하고 있다.

과거 LTA가 신사협정에 그치며 '가격 고점'의 신호로 해석됐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선급금과 최소 구매 의무 등 고강도 장치가 결합, 업황 둔화 시에도 수익을 지키는 '하방 안전장치' 역할을 할 전망이다.

특히 AI 인프라 중심의 장기 투자 수요가 스마트폰·PC 등 단기 소비재 수요를 대체하면서 메모리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롤러코스터' 식 사이클 진폭이 크게 축소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샌디스크 등 글로벌 주요 업체들이 이미 수조 원대 수주잔고(RPO)를 확정했다. 메모리 업계는 과거와 같은 실적 급등락이 사라지고 새로운 성장 모델인 '신사업 모델(NBM)'로의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신사협정 넘어 '수주잔고'로…선급금·재무보증 결합한 '강력한 방패'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실적 발표를 통해 주요 고객사들과 구속력이 강화된 장기공급계약(LTA) 체결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LTA의 핵심은 과거의 느슨한 협약에서 벗어나 선급금, 최소 매출 보장, 재무적 보증 등 강력한 이행 강제 장치를 포함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LTA는 공급 부족 시 가격을 고정하려는 성격이 강해 업계에서는 이를 '가격 고점'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현재의 계약 구조는 사실상 '수주형 비즈니스'인 수주잔고(RPO) 개념으로 진화했다.

글로벌 5위 낸드 기업인 샌디스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샌디스크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5건의 장기계약만으로 약 420억 달러(약 62조 원)의 최소 매출을 확보했으며 고객이 구매 의무를 어길 경우를 대비해 110억 달러 규모의 재무보증까지 받아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적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콘퍼런스콜에서 "과거와 달리 상당한 구속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 역시 구조적 대안을 종합 검토해 하방 리스크를 차단하고 있다. 가격 결정 방식 또한 고정과 변동 가격을 혼합해 가격 하락기에는 고객사와 혜택을 공유하면서도 공급사는 일정 수준의 마진을 방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SK하이닉스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37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23일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2조 5763억원, 37조 6103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최대 실적으로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사진은 이날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2026.4.23 © 뉴스1 김민지 기자

AI가 바꾼 수요 구조…'널뛰기 사이클' 대신 장기 호황 국면 진입
메모리 산업이 이처럼 강력한 LTA를 체결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AI 발(發) 수요 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있다. 과거 메모리 수요가 경기 변화에 민감한 스마트폰이나 PC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수요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AI 서버용 메모리는 공정 난도가 높고 생산 확대에 시간이 걸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이 주를 이룬다. 공급을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다 보니 고객사들이 가격 협상보다 '물량 확보'를 우선시하며 먼저 장기계약을 요청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삼성증권 등 증권업계는 고객사들이 가격을 일부 양보하더라도 장기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리스크 관리가 됐다고 분석한다.

이 같은 구조 변화는 메모리 사이클 하락기의 리스크를 줄여준다.장기계약에는 최소 물량과 일정 수준의 가격이 포함돼 있어 업황이 꺾이더라도 매출과 마진의 급락을 방어할 수 있다.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분명하다. 삼성전자는 2021~2022년 20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업황이 꺾인 2023년에는 대규모 적자를 냈다. 가격 하락이 곧바로 실적 붕괴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반면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증권가에서는 향후 감익 구간이 오더라도 LTA를 통해 이익 감소 폭이 제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일정 수준의 매출이 선확정된 상태에서 가격 하락 충격이 일부 흡수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메모리 산업은 '가격 사이클 산업'에서 '수주 기반 산업'으로 전환되는 초입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완전한 탈(脫)사이클은 아니지만, 과거처럼 흑자와 적자를 오가는 극단적 변동성은 상당 부분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공급에 따른 사이클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LTA 구조는 하락기 실적을 지탱하는 완충장치 역할을 할 것"이라며 "메모리 기업들의 이익 가시성과 기업가치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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