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IMO)의 해운 탄소세 도입 논의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연기되면서 K-조선의 '희망 고문'도 길어지는 모양새다. 선박에 대한 친환경 규제가 강화하면 노후 선대 교체 가속화, 친환경 엔진 개조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다만 '친환경 선박 교체'라는 장기적인 방향성은 유지되는 만큼 조선업계는 차분히 지켜보겠다는 기조다. 탄소세 도입을 반대해 온 미국 트럼프 정부의 소프트파워가 약화하면서 올 연말에는 통과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年 100억 달러' 해운 탄소세 논의 연말로
7일 업계에 따르면 IMO는 지난 1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84차 회의를 진행하고 넷 제로 프레임워크(NZF)에 대해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위원회는 오는 11월 말부터 열리는 85차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NZF는 5000톤 이상의 대형 선박이 기준치 이상의 탄소를 배출할 경우 1톤당 최대 380달러의 세금을 부과하는 '해운 탄소세'를 골자로 한다. 전체 해운 탄소세 규모는 연간 100억 달러(약 14조 5000억 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선박 연료의 온실가스 집약도를 제한해 화석연료 사용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연료 표준제'도 포함된다.
앞서 IMO는 지난해 4월 83차 MEPC를 열어 NZF 초안을 승인한 바 있으나 10월 임시회의에서 최종 채택은 무산됐다. 미국과 산유국의 거센 반대에 논의를 연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시 미국 국무부·에너지부·교통부 장관은 공동 성명을 통해 "우리 시민과 에너지 공급업체, 해운사와 고객, 관광객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어떠한 조치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NZF 찬성 회원국 선박의 미국 입항을 차단하는 보복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번에도 미국 정부는 반대 기조를 재확인했다. 로라 디벨라 미국 연방해사위원회(FMC) 위원장은 84차 MEPC에서 "NZF는 국제 해역을 운항하는 미국 화주와 선박에 대한 불필요한 세금"이라며 "이런 비용은 결국 수입품 최대 소비국인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업계 예의주시…회원국 동향 촉각
규제 강화 기조가 후퇴하면 해운업계의 선박 발주 계획 역시 바뀔 수 있는 만큼 HD한국조선해양(009540)·한화오션(042660)·삼성중공업(010140) 등 국내 조선업계는 12월 초 MEPC 회의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조선업계는 그간 해운 탄소세 도입 등으로 저탄소·무탄소 선박 수요 촉진을 기대해 왔다. 또 암모니아·메탄올·수소 추진 등 친환경 선박에 대한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 왔다. 해운업계의 친환경 로드맵이 변화하면 조선업계의 영업전략 및 R&D 일정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연말 해운 탄소세 도입 가능성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NZF 찬성과 반대 측의 첨예한 대립으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과 그리스, 산유국, 개발도상국 등 반대 회원국의 수적 우위가 여전해 규제 강도가 낮아지거나 규제가 추가로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반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에너지 연구소는 "미국의 압박은 계속 높게 유지되겠지만 지난해 10월 이후 발생한 여러 사건으로 미국의 소프트파워와 영향력은 타격을 입은 만큼 압박의 실효성은 변했고, 더 많은 국가가 NZF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