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기술 만들었지만 규제때문에 한국 사업 접습니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13일, 오후 07:15

세계 무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우리 중소·벤처 기업들이 국내 규제에 막혀 사업을 포기하거나, 전혀 다른 업종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잣대로 미래를 재단하는 각종 규제들은 기업 생존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매년 수많은 규제 애로가 접수되고 정부마다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고 외치지만, 현장의 체감 온도는 여전히 차갑기만 합니다. 이에 이데일리는 K혁신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낡은 규제의 실태를 정밀 진단하고 고군분투하는 중소·벤처 기업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데일리 김아름 기자] “해외에서는 혁신 기술로 인정받는데 한국에서는 제도 밖 기술로 남아 있는 현실이 가장 답답합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한국 사업을 접고 해외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기반 반려동물 생체인식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펫나우’ 임준호 대표는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어려움을 토로했다. 펫나우는 강아지의 비문(코 무늬)을 인식해 식별하는 서비스로 특허 24건을 취득하고 논문을 67건 낸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다. 2022년에는 ‘CES 최고혁신상’을 받으며 전 세계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펫나우’ 임준호 대표가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아름 기자)
임 대표는 “반려견 코에는 무늬가 있어서 사람의 지문 같다”며 “AI가 자동으로 촬영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0.05초마다 추적, 초점, 판별해 99.998%에 달하는 정확도를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 동물등록제는 유기동물 예방을 위해 2013년 도입됐지만, 마이크로칩 삽입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인해 시행 13년차인 현재까지 성과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임 대표는 주장했다. 그는 “마이크로칩을 굵은 주사로 주입하는 방식에 대해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마이크로칩 이식률이 13년 동안 20%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동물등록제 시행 부진은 정부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있는 펫보험 활성화에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칩은 MRI·CT 촬영 시 전파 간섭 문제가 발생해 제거 후 재삽입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또 펫보험을 위해서는 펫의 신원확인이 중요한데 마이크로칩이 없이는 사실상 신원확인이 불가능해 손해율이 높고 보험료가 비싸다는 지적들이 많다. 임 대표는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창업에 나섰다.

문제는 국내 현행 동물보호법 체계에서는 생체인식 기반 동물등록이 공식 등록 방식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어 시장 형성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임 대표는 “국회에서 동물등록제 개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며 “현행법에 ‘마이크로칩 또는 생체인식’이라는 한 단어만 추가되면 가능한데 결국 입법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현재 동물보호법 주무부처 농림축산식품부는 기술 검토와 협의 절차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일정이나 제도화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임 대표는 “내장형 마이크로칩을 시술하고 있는 수의사 등 관련 이해관계자 간 의견 조정 과정으로 인해 법제화가 늦어지면서 기술 역량과 제도화의 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며 “기술 검증과 정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제도화 논의는 기약 없이 장기간 지연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펫나우의 반려동물 생체인식 서비스 이미지 (자료=펫나우)
이러한 제도 공백이 지속되면서 국내 관련 기업들은 피보팅(사업 전환)이나 폐업을 진행 중이거나 해외 이전을 검토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펫나우 역시 해외 공공시장의 공략을 시작했다. 2023년 세계적인 공영방송 영국 BBC가 4분 짜리 다큐멘터리를 찍어 펫나우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부터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도 해외에서 사업 제안이 들어올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현재 미국 국토교통부와 지방정부인 마이애미카운티 등과 사업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임 대표는 “미국은 반려동물이 2억 마리로 큰 시장”이라며 “작년 해외에서 일부 매출이 일어났는데 올해는 10배 이상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국내에서는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로 경기도 반려견 비문등록 시범사업과 서울시 공공 테스트베드 사업 등을 통해 정책 적용 가능성에 대한 실증을 진행한 바 있지만 아직까지는 규제로 인해 제대로 된 사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임 대표는 “농림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여 준다면 한국에 남아있을 것이지만 해외에서 사업이 본격화 하면 펫나우 역시 해외에 지사를 설립할 수밖에 없다”며 “영국·스위스·호주·남아공 등 다수 국가에서 국내 기술의 서비스를 도입하고 수출 성과가 이미 확보됐는데 국내 제도화가 지연된다면 글로벌 시장이 먼저 형성되면서 기술 주도권을 해외에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공동 기획 이데일리·법무법인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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