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1회 국무회의 겸 제8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보고를 청취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5.12 © 뉴스1 이재명 기자
2003년 카드대란 당시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민간 배드뱅크 ‘상록수’가 설립됐지만, 상당수 채무자들이 20년 넘게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배경에는 ‘소멸시효의 기계적 연장’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성실하게 조금씩이라도 빚을 갚은 채무자일수록 오히려 시효가 반복 연장되며 장기 추심에 노출되는 구조가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1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5년 이상 장기 연체채권은 약 285만8000건에 달한다. 통상 채권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시효 연장이 반복되며 장기 추심 구조가 고착화돼 왔다.
특히 장기연체채권을 주로 보유한 대부업권의 경우 5년 이상 연체채권 규모는 약 8조5000억 원에 달하지만, 연간 시효 완성 채권 규모는 10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에서는 연체 초기부터 강한 추심 구조가 작동한다.
연체 발생 5일 이후에는 단기연체 정보가 신용평가사에 등록되고 금융권 공유와 추심이 시작된다. 약 1개월이 지나면 만기 전 원리금 일시 상환 요구와 연체가산금리가 부과되며, 90일 이상 연체 시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된다. 이 경우 채무를 모두 갚더라도 연체 이력은 최장 5년간 공유된다.
금융회사들은 통상 6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을 ‘추정손실’로 분류해 상각 처리하고 세법상 손금 산입을 통해 세제 혜택을 받는다. 이후 해당 채권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매입채권추심업체 등 추심 전문업체로 매각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채권이 반복적으로 재매각되며 추심이 장기화된다는 점이다. 연체채권은 부실채권(NPL) 시장을 거치며 더 영세한 추심업체로 계속 넘어가는 구조가 형성돼 왔다.
특히 소멸시효 연장 구조는 취약 채무자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
채무자가 소액이라도 변제하거나 변제 계획을 제출하면 ‘채무 승인’으로 간주돼 소멸시효가 다시 연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추심업체들이 지급명령 제도를 활용하면서 시효 연장이 반복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권자가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면 법원은 서면 심사 후 이를 채무자에게 송달한다. 채무자가 14일 내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지급명령은 확정되며, 시효는 다시 최장 10년까지 연장될 수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5만 원, 10만 원씩이라도 성실하게 갚은 채무자일수록 오히려 상환 의지가 인정돼 시효가 반복 연장되는 악순환이 이어져 왔다”며 “결국 성실 상환자에게 장기 추심 부담이 더 가중되는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죽을 때까지 10배, 20배 이자가 늘어서 집안에 콩나물 한 개라도 팔아서 다 갚아야 한다"며 장기연체채권의 추심 관행을 강하게 질타한 것도 연체채권의 기계적 연장 관행과 맞닿아 있다.
이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올해 2월 ‘연체자 보호 및 신속한 재기 지원을 위한 개인 연체채권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소멸시효의 기계적 연장 관행 개선에 착수했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소멸시효를 연장하지 않은 금융회사에 법인세 감면 혜택을 부여하고, 오는 7월부터는 금융권의 연체채권 매각 현황과 소멸시효 완성 등 채무조정 실적을 공시해야 한다.
연체채권이 은행·카드사→저축은행·대부업→영세 추심업체로 손바뀜되면서 추심의 음성화·탈법화가 지속되는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원채권사의 책임 부여도 강화한다. 2024년 기준 440개 매입채권추심업체가 약 16조 2000억 원의 매입 연체채권을 보유 중인데 이 가운데 약 16%(2조 6000억 원)를 영세 추심업체 410개 사가 보유·추심 중이다.
논란이 된 민간 배드뱅크 '상록수' 사례를 보면 2003년 카드대란 당시 금융권이 만든 민간 부실채권 처리회사인데, 은행 등 원채권자에게는 고객 책임에서 절연된 상태에서 채무자에게 20년 넘는 강도 높은 추심이 지속돼 왔다.
이에 금융당국은 채권 매각 시 매각 조건으로 '재매각 관련 사항'을 포함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연체채권 매각 시 감독당국에 분기별 보고 및 매각 내용 공시를 의무화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제도 개선을 통해 앞으로 소멸시효의 기계적 연장 관행 등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영세 대부업체나 20년 넘게 이어져 온 장기 추심 사례 등 사각지대가 여전한 만큼 광범위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junoo5683@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