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행 신용평가 체계에서는 발행사가 원하는 등급을 주지 않는 신평사와의 계약을 임의로 끊고 다른 평가사를 선택하는 행위를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가 이 구조적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례로 지목되면서, 등급 히스토리를 증권신고서에 의무 기재하도록 강제하는 핀셋 규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 제이알글로벌리츠는 2023년 상반기 첫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을 앞두고 한국신용평가(한신평)와 NICE신용평가(나신평)의 등급이 각각 ‘A-’와 ‘BBB+’로 엇갈리자, 나신평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한국기업평가(034950)(한기평)에 신규 평가를 의뢰해 ‘A-’를 획득했다. 실제 펀더멘털보다 높은 등급으로 공모채를 발행한 셈으로, 그 리스크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전가됐다.
시장에서는 낮은 등급을 받은 발행사가 제3의 기관을 타이브레이커(Tie-breaker)로 추가 활용하는 것은 허용하되, 불리한 등급 공시를 회피할 목적으로 기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핀셋 규제론이 힘을 얻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는 발행사가 증권신고서 제출 시 최근 5년 내 신평사와의 계약 중도 파기 여부와 해지 직전 예비등급을 의무 기재하도록 강제하는 규제가 꼽힌다. 등급 히스토리를 채권시장 참여자 모두가 꿰고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이 같은 공시 강제만으로도 발행사가 신평사를 임의로 교체하는 유인을 상당 부분 억제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직전 예비등급과 계약 해지 이력을 신고서에 명기하도록 하면 투자자가 등급 신뢰도를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이 생기는 것”이라며 “이것만으로도 발행사가 임의로 신평사를 교체하는 유인은 상당 부분 억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한국은 신평사 간 스플릿이 드물고 정기 평정이 지나면 서로 맞춰가는 분위기”라며 “투자자 정보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실효성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업계에서도 비공식 평가 의뢰 후 공시 없이 없던 일로 처리하는 관행처럼 제도 밖 음성적 거래까지 규제망에 포함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식 평가 계약 밖에서 이뤄지는 음성적 거래까지 규제망에 포함시키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이러한 우회로를 촘촘히 막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규제에 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비공식적으로 등급을 의뢰하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시 없이 없던 일로 하는 경우까지 규제망에 포함시키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제도 설계 단계에서 이러한 우회로를 얼마나 촘촘히 막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