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환능력 따져묻고 직접 담보 실사…사모신용 빨간펜 든 기관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18일, 오전 06:15

[이데일리 마켓in 김연지 지영의 기자] "시장 자체가 끝났다기보다는 아무나 담아도 되는 시장이 끝난 것이다."

글로벌 사모신용(private credit·운용사 등 비은행 금융회사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투자 방식으로, 직접대출·메자닌·부실채권·자산담보형 대출 등을 포괄하는 대체투자 전략) 시장을 바라보는 기관투자가들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블루아울 사태를 계기로 비상장 대출자산의 가치평가와 유동성 리스크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사모신용 자체를 외면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은행권 대출 공백과 안정적인 인컴 수요가 여전한 만큼, 시장의 초점은 투자 중단이 아니라 선별 투자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고금리 수혜 자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금이 몰렸다면, 이제는 차주의 상환 능력과 담보 가치, 운용사의 심사 역량에 따라 성과가 갈리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블루아울 후폭풍…운용사 검증 강화 나선 국내 LP들

17일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연기금과 주요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은 최근 해외 사모대출 시장에서 불거진 유동성·평가 논란을 계기로 관련 포트폴리오 점검에 나서고 있다. 사모신용 투자를 중단하겠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신규 출자와 기존 위탁 전략을 두고 투자심사 기준을 높이는 분위기다.

실제 군인공제회 등 일부 공제회는 해외 운용사와 기존 투자자산을 직접 점검하기 위한 출장 일정을 잇따라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협중앙회를 비롯한 일부 기관도 사모신용 신규 출자 심사 과정에서 운용사의 업력과 위기 대응 경험을 이전보다 까다롭게 들여다보고 있다. 금융위기와 금리 급등기 등 여러 차례 시장 충격을 거친 글로벌 GP를 중심으로 출자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진 영향이다.

점검의 초점은 차입 기업의 현금흐름과 담보 가치, 약정 구조, 부실 발생 시 회수 가능성 등에 맞춰지고 있다. 특히 코버넌트 조건을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보는 분위기다. 코버넌트는 차입 기업이 일정 수준의 재무비율을 유지하도록 하거나 추가 차입, 배당, 자산 매각 등을 제한하는 약정이다. 차주가 흔들릴 경우 대주단이 얼마나 빨리 개입하고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가 사모신용 투자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사모신용 시장에 대한 우려는 약 두 달 전 블루아울 사태를 계기로 확산됐다. 미국 대체투자 운용사 블루아울캐피털이 운용하는 일부 리테일형 사모신용 상품에서 환매 압력이 불거지면서 펀드 안에 담긴 비상장 대출자산의 가치평가와 유동성 관리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공개시장에서 매일 가격이 형성되는 채권과 달리 사모신용은 자산가치를 즉각 확인하기 어렵고, 환매 요구가 몰릴 경우 대응 여력도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리스크 점검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연기금과 공제회 등이 해외 사모대출 상품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해온 만큼, 글로벌 시장 불안이 커질 경우 국내 LP들도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사모신용 시장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낮은 투명성, 차입 기업의 디폴트율 상승, PIK 대출 증가를 꼽았다. PIK는 이자를 현금으로 내지 않고 원금에 더해 나중에 갚는 구조다. 보고서에 따르면 PIK 구조가 적용된 사모신용 비중은 2022년 6~7%에서 2025년 약 11%로 확대됐다.



◇"아무나 담는 시장 끝"…구조적 매력은 여전

다만 사모신용을 둘러싼 경계감이 시장 전반에 대한 회의론으로 번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블루아울 사태가 드러낸 것은 사모신용 자체의 한계라기보다 유동성 구조와 기초자산 건전성을 충분히 따지지 않은 투자 방식의 취약점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투자 검토 속도를 늦추고 심사 기준을 높이는 것도 자산군을 배제하기보다 운용사와 전략을 다시 선별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사모신용의 구조적 매력도 여전하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은행들이 규제 부담과 자본비용 증가로 중견기업 대출과 인수금융에 보수적으로 돌아서면서, 비은행권 운용사들이 그 빈자리를 메워왔다. 기업 입장에서는 은행 대출이나 공모채보다 빠르고 유연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LP 입장에서는 변동금리 기반의 안정적인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사모신용 시장의 성장 배경으로 꼽힌다.

글로벌 LP들의 배분도 이어지고 있다. 아비바인베스터스가 최근 펼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사모 기업대출 배분 비중은 지난해 10.3%에서 올해 12.5%로 높아졌다. 향후 2년간 가장 투자 매력이 큰 사모신용 전략으로는 자산 담보형 대출과 부실채권·기회주의 크레딧 전략이 꼽혔다. 응답자의 49%는 매출채권·재고·설비·부동산 등 특정 자산을 담보로 한 대출 전략을, 48%는 시장 변동성이나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격 매력이 생긴 부실채권·기회주의 크레딧 전략을 유망하게 봤다.

이와 관련해 국내 증권가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사모대출을 여전히 주요 대체투자처로 보는 것처럼,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움직임 역시 단순한 위축과는 거리가 있다"며 "다만 과거처럼 사모신용이라는 이름만으로 자금이 몰리던 시기는 지났고, 차주의 퀄리티와 담보 가치, 회수 가능성, 운용사의 언더라이팅 역량이 성과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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