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라인 멈추면 中에 시장 거저 내주는 꼴…국가 위기 막아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18일, 오전 05:02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성과급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 13일 정부 중재 아래 사후조정에 나섰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의 총파업 예고일 사흘 전인 18일 열리는 최후의 협상마저 진전이 없을 경우 18일간 총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거대한 장치산업이다. 생산라인 하나를 구축하는 데 수십조원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또 매우 빠른 기술 변화를 따라잡으려면 끊임없이 투자해야 한다. 2023년 당시 삼성전자는 최악의 반도체 불황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37조원 급감했고, 반도체 부문에서만 약 15조원 적자를 냈다. 그럼에도 대규모 투자를 이어갔다. 이를 악물고 버틴 투자가 있었기에, 이후 반도체 슈퍼사이클에서 폭발적인 실적 반등을 이뤄낼 수 있었다. 과도한 임금 인상과 성과급 요구는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쓸 수 있는 재원을 잠식할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이미 냉혹한 현실을 증명해 왔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은 내부 갈등과 단기 수익 집착, 투자 지연의 악순환 속에서 한국과 대만에 주도권을 완전히 내줬다. ‘잃어버린 30년’의 출발점에는 기술 패권을 지키지 못한 반도체 산업의 몰락이 있었다. 인텔 역시 기존 사업의 수익성에 안주하고 모바일, AI 반도체 전환에 실기하면서 주도권을 상실하는 치욕을 겪었다. 현재 삼성전자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해외 출장 중 급거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6일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머리 숙여 사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는 인공지능(AI) 혁명으로 인해 그 투자의 규모가 역사상 가장 큰 시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발판 삼아, 시장 주도권 확보와 선단공정 전환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설비투자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 결정적인 시기에, 삼성전자는 단기 성과급 분쟁에 발목이 잡혀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시장의 판 자체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은 메모리 사용량을 6분의 1로 줄이는 ‘터보퀀트’ 기술을 공개했고, 엔비디아는 메모리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트라이어텐션’ 기술을 개발했다. 중국 딥시크의 AI 모델은 메모리 사용량을 10분의 1로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빅테크들이 메모리 의존도를 낮추는 기술 혁신에 올인하는 동안, 호황의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단기 실적의 달콤함에 취해있는 사이, 시장은 이미 다음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마이크론, 키옥시아·웨스턴디지털 연합, 중국 업체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추격도 심상치 않다.

특히 중국은 메모리 등 반도체 분야의 기술 격차를 급속도로 좁히고 있다. 중국 D램 업체 CXMT는 올해 생산능력을 전년 대비 56%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낸드플래시 제조업체 YMTC는 이미 글로벌 시장점유율 13%에 육박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2025~2027년 전 세계 반도체 장비 투자 중 중국이 32%로 세계 1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생산라인이 멈추는 그 순간, 중국은 조용히 그 빈자리를 메울 것이다.

반도체 제조는 일반 제조업의 조립라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웨이퍼 위에 회로를 그리는 노광, 깎아내는 식각, 막을 씌우는 증착 등 700개 이상의 공정이 3~4개월간 쉼없이 이어진다. 공정 중간에 잠시라도 멈추거나 문제가 생기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지 못해 산화되거나 오염돼 웨이퍼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14일부터 시작한 웨이퍼 보관 작업은 파업에 대비한 비상 조치이자, 대한민국 경제 엔진에 빨간불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경보음이다. 파업 강행으로 팹의 가동률이 급락하고 공정 중인 웨이퍼가 전량 폐기되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가 절실하다.

삼성전자 노사가 18일 최후의 협상 때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정부는 결단해야 한다. 노사 자율이라는 원칙이 대한민국 경제의 공멸을 방조하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법에서 규정한 긴급조정권은 이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법이 부여한 마지막 보루다. 반도체는 한 기업의 상품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를 지키는 국가안보 자산이다. 파국을 막기 위한 정부의 단호한 결단만이 우리 반도체 산업의 골든타임을 지켜낼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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