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닭으로 '면비디아' 일군 며느리, 핏줄승계 관행 뚫고 '회장' 오른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18일, 오전 05:56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영업이익률 22%, 현재 매출의 80% 이상은 해외에서 나온다. 지난해 불닭 브랜드의 누적 판매량은 90억개를 돌파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른바 ‘김정수 매직’이라 부른다.

삼양식품이 김정수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결정하면서 오랜기간 공석이었던 회장 자리가 채워졌다. 그룹 경영 체제가 본격적인 ‘김정수 시대’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단순한 승진이 아닌, 실적과 성과를 기반으로 한 리더십을 공식화한 상징적 장면으로 보고 있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2023년 당시 '삼양라면 60주년 기념 비전선포식'에서 그룹의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뉴스1)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지난 12일 이사회를 열고 김정수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 김 부회장은 다음달 1일부터 회장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2021년 총괄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약 5년 만이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글로벌 사업 성장세에 대응한 리더십과 책임경영 강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창업주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의 맏며느리다. 서울예고와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를 나온 그는 1994년 전인장 전 회장과 결혼한 후 가정주부로 지냈다. 삼양식품이 ‘공업용 우지 파동’ 후유증과 외환위기(IMF) 사태로 어려움을 겪던 1998년 회사에 들어와, 2012년 불닭볶음면을 주도해 만들었다.

기업경영 경험은 없었지만, 소비자로서의 경험을 적극 활용하고 입사 초기 전국 영업소를 직접 돌아다니며 회사 생존에 매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점 때문에 시아버지인 전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 자질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인장 전 회장이 사법 이슈 등으로 2019년 이후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회장직은 장기간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이런 가운데 김 부회장의 이번 회장 승진은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수행해온 삼양식품 최고경영자 역할을 명문화하고, 향후 그룹 리더십 방향을 분명히 한 인사로 평가된다.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김 부회장은 라면업계 4위까지 추락했던 삼양식품을 재건한 주역으로 꼽힌다. 이 같은 성과의 중심에는 불닭 브랜드가 있다. 2011년 김 부회장이 당시 고등학생이던 딸과 서울 명동을 찾았다가 한 불닭집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매운맛’ 가능성에 주목했다. 닭 1200마리, 소스 2톤(t)을 투입하고 매일 시식하며 직원들과 1년여 공들인 끝에 감칠맛을 찾아냈다. 출시 초기 ‘너무 맵다’는 반응에도 제품 정체성인 ‘매운맛’을 유지하는 전략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결과는 글로벌 흥행이었다. 2024년께 유튜브를 중심으로 ‘파이어 누들 챌린지’(매운 라면 도전 영상) 열풍이 확산하면서 불닭볶음면은 K푸드를 대표하는 글로벌 히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제품 성공을 넘어 K푸드의 글로벌 위상을 끌어올린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내수 기업에서 일약 수출 주도형 기업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삼양식품 해외 매출 비중은 80%를 넘어섰고, 불닭볶음면 누적 판매량은 90억개를 돌파했다. 해외 매출은 2016년 930억원에서 올해 1조8000억원대를 넘어섰다. 9년 만에 약 20배 성장한 셈이다. 실적 성장세도 가파르다. 그가 부회장에 오른 2021년 삼양식품 매출은 6420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조 3518억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10%에서 22%로 상승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김 부회장은 글로벌 운영 체계 구축에도 집중했다. 국가별 소비 문화와 유통 구조, 가격 전략, 현지 규제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지역 맞춤형 전략을 구축했고, 이는 미국·중국·동남아·유럽 시장 확대의 기반이 됐다. 올초 이재명 대통령 주재의 경제전략 회의에서 해외 상표권 분쟁에 따른 K브랜드의 보호 필요성을 작심 발언한 김 부회장의 일화는 업계에서 계속 회자된다. 남다른 배짱과 도전정신의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는 이번 회장 승진이 ‘혈통 중심 승계’가 아닌 ‘성과 중심 리더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 기업 성장을 이끈 경영 능력과 성과가 회장 취임의 가장 강력한 배경이 됐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삼양식품의 현재 기업가치와 글로벌 경쟁력은 사실상 김 부회장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번 승진은 성과로 입증된 리더십에 대한 시장의 인정”이라고 말했다.

삼양식품은 앞으로 글로벌 경영 체제 강화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현재 중국 자싱 공장 건설이 진행 중이며, 국가별 사업 거점 확대와 글로벌 공급망 강화 전략도 추진 중이다. 업계는 삼양식품이 글로벌 시장 다변화와 신규 브랜드 확대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최고경영자의 상징성과 권한이 사업 추진력과 직결되는 만큼, 김 부회장의 공식 회장 취임은 향후 해외 사업 확장 과정에서 더욱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회장 승진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삼양식품이 성과 중심 경영 체제를 공식화했다는 의미가 크다”며 “김정수 회장 체제 아래 글로벌 식품기업으로의 도약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6월 1일 회장에 오르는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삼양식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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