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 볶는 온도 1도 차이가 명품 만든다"...40년 전통 방앗간의 고집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18일, 오후 07:12

[이데일리 김세연 기자] “깨를 볶을 때(로스팅 할 때) 1도만 달라져도 맛이 확 변합니다. 각종 기준을 지키면서 이 온도를 잘 조절해 고소하게 만드는 것이 기술이죠.”

이태영 풍년기름집 대표가 서울 중구 풍년기름집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세연기자)
이태영 풍년기름집 대표는 1986년 창업한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은 ‘2세 소상공인’이다. 이 대표가 풍년기름집을 물려받으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깨를 볶는 기술’이었다. 이 대표는 “로스팅을 할 때는 원재료에 따라 온도, 시간 등 설정 값을 바꿔야 한다”며 “2대 대표에겐 부모님의 손맛을 물려받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 부모님이 ‘감’으로 해오던 것을 데이터화하며 상황에 따라 여러 시도를 하다 보니 로스팅 기술을 배우는 데만 5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중구 ‘풍년기름집’에서 만난 이 대표는 인터뷰 내내 직접 짠 기름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엄격한 성정 덕에 품질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자신감을 기반으로 ‘기름 시식 시스템’을 고안하게 됐고 자사의 기름을 더 널리 알리게 됐다는 게 이 대표 설명이다.

풍년기름집에는 생참기름, 보통로스팅 참기름 등 총 5가지 종류의 기름이 있다. 기름 종류에 따라 로스팅 공식이 달라진다. 작황에 따라서도 로스팅 온도는 달라야 한다. 깨의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매년 깨 수급처를 하나로 정하고 로스팅 공식을 새로 세운다. 깨를 씻은 후 몇 분 만에 로스팅 과정에 돌입하는지에 따라서도 기름 맛은 천차만별이다.

이 대표는 “1도의 미학이라고 한다. 볶는 온도 1도 차이로 맛이 확 바뀐다”며 “날씨 등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일정한 기온을 유지하는 등 로스팅 환경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커피와 기름 모두 미세한 차이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언급했다. 그는 “커피는 똑같은 사람이 뽑아도 추출 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기름을 뽑을 땐 가장 중요한 변수가 ‘온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세한 차이까지 살려낸 풍년기름집의 기름 맛은 최근 입소문을 타며 유명세를 높이고 있다.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출연으로 이름을 알린 윤남노 셰프도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풍년기름집 기름으로 만든 이 대표 어머니의 반찬을 맛본 뒤 감탄을 쏟아냈다. 윤 셰프 영상을 보고 대만에서 이 기름을 맛보러 한국에 여행을 온 고객도 있었다.

이 대표는 “기름을 사려고 전용 캐리어를 들고 1박2일 여행을 오셨더라. 기름만 16만원어치 사갔다”며 “영상을 보고 찾아오시는 분도 있고 시식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지나가다 백년가게 현판을 보고 들어오시는 경우도 있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중구 풍년기름집에 설치된 기름을 짜내는 착유기 앞에 포장된 들기름, 참기름이 놓여 있다.(사진=김세연기자)
풍년기름집이 입소문을 탄 건 이 대표의 전략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그는 풍년기름집에 합류했던 2015년부터 ‘선택과 집중’을 통해 풍년기름집만의 정체성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과거에는 미숫가루 등 제품 종류가 더 많았는데 부모님은 계속 그렇게 가야 한다, 저는 줄여야 한다는 입장으로 대립하기도 했다”며 “장기적으로 볼 때 가게의 색채와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주력 제품 ‘기름’을 중심으로 시식 서비스를 도입하고 기름 외 제품 종류를 줄였다”고 부모님을 설득한 과정을 설명했다.

유통 판로를 뚫은 것도 이 대표의 공이 컸다. 그는 “시장 자체에 사람들이 없어지다 보니 다른 판로를 개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며 “온라인 유통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봤다. 인쇄업을 하면서 배웠던 것을 바탕으로 그에 맞는 여러 가지 포장 등을 신경 썼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금 풍년기름집에서 기름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전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상 풍년기름집의 정체성이자 주력 메뉴인 기름 총괄 권한을 아들인 이 대표가 도맡은 것이다. 어머니는 가게를 지키며 단골손님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현재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아버지는 고추 등 기름 외 제품의 가공 및 유통을 담당한다.

풍년기름집은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하는 ‘백년가게’ 선정 이후 롯데쇼핑의 e커머스 플랫폼 ‘롯데온’을 통해 경상권 판로를 뚫었다. 이외에도 각종 온라인 판로를 확보해 풍년기름집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단골손님도 늘어나고 있다. 이 대표는 “재구매율은 90% 정도 된다. 한번 우리 기름을 드시면 꼭 다시 찾는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또한 “그간 제품 질에 집중한 덕에 제품은 많이 안정화됐다. 이제 풍년기름집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람들이 ‘기름’ 하면 풍년기름집, ‘서울’ 하면 풍년기름집을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서울 중구 풍년기름집 앞에 이태영 풍년기름집 대표(오른쪽)와 그의 어머니가 함께 서 있다. (사진=김세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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