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정부 곳간 '두둑'…물가 자극 우려에 "선별 지원해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21일, 오후 05:51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정부의 재정 여력이 풍부해지면서, 향후 국내 물가 경로를 결정할 핵심 변수로 ‘정부의 돈 풀기’가 부각되고 있다. 중동 전쟁 등 대외적인 공급망 불안뿐 아니라 법인세를 중심으로 한 국세수입(세수) 급증이 내수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 11일 서울 시내 한 주민센터에 고유가 피해지원금 관련 현수막이 붙어 있다. (사진= 연합뉴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법인세 큰 폭 증가 등 세수 호조에 따라 오는 8월 말 내년 예산안과 중기재정운용계획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상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미 지난 3월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 시 올해 세수 전망치를 415조 4000억원으로 올려 잡았다. 지난해(373조 9000억원)보다 11.1% 증가한 수치다.

최근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반도체 시장의 구조적 패러다임 변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의 법인세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앞서 KB증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을 각각 300조원과 200조원으로 가정하면 내년에 두 회사가 납부할 법인세(2027년 세수 기준)의 합계가 12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두 회사가 내는 법인세만 지난해 법인세 전체(84조 600억원)보다 약 50% 많은 셈이다. 해당 기업 직원들이 지급받는 성과급이 늘어남에 따라 소득세도 더 걷히게 된다.

여기에 증시 활황에 따른 거래세 증가와 금융사들의 실적 호조가 맞물리면서 정부의 세수 여건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조용구 신용증권 연구원은 “기업이익 전망치 상향, 올해 명목성장률 10% 전망 등을 고려할 때 재정수입은 큰 폭으로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는 이처럼 두둑해진 곳간을 바탕으로 확장 재정 기조를 이어가며 내수 살리기에 총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대통령실에서 ‘국민배당금’을 언급하고 소비 진작을 독려하고 나선 것도 반도체 수출에서 시작된 온기를 민간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중동 전쟁의 불확실성이 상존하지만, 주식시장 회복세와 정부의 확장 재정이 시너지를 내면 내수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풍부한 재정 여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어렵게 진정시키고 있는 인플레이션 심리가 다시 자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강해진 가운데,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집행까지 더해지면 물가 통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세수가 엄청 늘어날텐데 일부는 빚을 갚는 데(국채 상환)도 써야겠고 재정 여력이 커진 지금이야말로 서민층과 취약계층을 ‘핀셋’처럼 집어내는 훨씬 선별적이고 정교한 지원책을 설계해야 할 때”라며 “재정 팽창 우려 등으로 금리가 완화적으로 가기 힘든 상황에서 정말 어려운 기업과 계층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 압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전문가는 “최근 시행된 ‘하위 70% 고유가 피해 지원금’ 같은 방식은 맞춤형 지원이라고 하기엔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다”면서 “이런 식의 돈 풀기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물가 압력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물가·금융안정을 지키면서 경제성장을 지원해야 하는 한국은행의 고심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에는 통화정책 확대가 펀더멘털(경제 기초여건) 대비 저금리를 유도했다면, 이제는 재정정책 확대가 고금리를 유도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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