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개봉로 대원 셀프주유소에서 시민이 기름통에 경유를 넣고 있다. © 뉴스1 임세영 기자
정부가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고유가 대응책으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이어가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이 가격상한제와 보편 보조금은 예외적 수단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부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와 대리점 등에 공급하는 가격의 상한을 정해 국제유가 상승분이 국내 기름값에 한꺼번에 반영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통해 국제유가 상승분이 국내 기름값에 한꺼번에 반영되는 것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IMF는 이런 가격통제 방식이 길어질 경우 재정 부담이 커지고 가격 신호도 흐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격 묶기보다 선별 지원…"취약층 현금·기업 유동성 우선"
피에르-올리비에 구랭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등은 지난 20일(현지시간) IMF 블로그 기고문 '에너지 및 식품 가격 충격에 대응하기: 정책 세부 설계를 제대로 하는 법'(Responding to the Energy and Food Price Shock: Getting the Policy Details Right)을 통해 "국내 에너지 가격은 국제 비용을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며 "가격상한제와 보편 보조금은 정말 예외적인 충격(truly exceptional shocks)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에너지 위기는 가격을 끌어올리고 경제활동에 부담을 주며 중앙은행을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하는 전형적인 부정적 공급 충격"이라며 "재정 조치도 역할은 있지만 일시적이고 표적화돼야 하며 시의적절하고 상황에 맞게 설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IMF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수입 가격 상승으로 단기간 국내총생산(GDP)의 2~3%에 달하는 실질소득 감소를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충격이 크더라도 과거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국내 가격이 국제시장 흐름을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IMF는" 가격 상승분 대부분은 초기에 반영돼야 한다"며 "정부 개입은 조정을 막는 것이 아니라 완화하는 데 목적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격 상승분을 정부가 모두 막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IMF는 가격 신호가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고 에너지 소비 절감과 공급 부족 방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취약계층 지원은 가격을 일괄적으로 낮추는 방식보다 현금 지원이 더 바람직하다고 봤다. IMF는 "저소득 가구는 고소득 가구보다 소득에서 에너지와 식품에 쓰는 비중이 2~3배 높다"며 "기존 사회지원 체계를 통해 지급되는 표적 현금 이전이 대체로 최선의 방식"이라고 밝혔다.
기업 지원 역시 가격통제보다 유동성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IMF는 "기업 지원은 생존 가능한 기업의 운영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파산을 피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단기 현금흐름 문제를 해결해야지 더 근본적인 생존 가능성 문제를 다루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정부보증 대출과 신용한도, 단기 세금 및 사회보장 납부 유예와 같은 일시적 유동성 지원이 첫 번째 대응 수단이 돼야 한다"며 "이런 수단은 재정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고 되돌리기도 쉽다"고 설명했다.
반면 가격상한제와 세금 인하, 보편 보조금은 신중하게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IMF는 "에너지세 인하와 가격상한제, 일반 보조금은 가격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를 약화시키고 대체로 고소득 가구에 더 큰 혜택을 주며 단계적으로 종료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동전쟁 위기극복을 위한 2026년 추가경정예산안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2026.3.31 © 뉴스1 김기남 기자
IMF "가격동결, 원천적으로 피해야"
IMF는 가격상한제 등 광범위한 가격통제가 정당화되려면 가격 충격이 명백히 일시적이고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빠르게 번질 위험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기대인플레이션 불안과 경제 과열 정도, 재정 여력도 함께 따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광범위한 가격 수단은 가급적 피해야 하며 사용하더라도 예외적이고 일시적이며 투명하고 엄격하게 제한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원칙적으로 전면적인 가격동결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2일 오전 0시부터 6차 석유제품 최고가격을 기존 5차 수준으로 동결 적용했다. 이에 따라 정유사 공급가격 기준 최고가격은 리터(L)당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으로 유지됐다.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는 지난 3월 13일 처음 시행됐다. 1차 최고가격은 리터당 보통휘발유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설정됐다. 최고가격은 정유사의 주유소 및 대리점 등에 대한 공급가격 기준이며 주유소 판매가격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민생 부담을 낮추기 위해 최고가격제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제도가 길어질수록 재정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정유사가 입은 손실을 재정으로 보전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최고가격제 6개월 유지를 전제로 4조 2000억 원 규모 목적 예비비도 편성됐다.
IMF가 한국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격통제보다 선별 지원과 유동성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는 권고가 나온 만큼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정부의 정책 조합을 둘러싼 논의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seohyun.shim@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