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中심] 빅파마의 신약 창고 된 중국 바이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23일, 오후 01:05

세계 최대 생산기지이자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인 중화권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자본시장의 시선이 향하고 있습니다. ‘자본中심’ 은 중국과 중화권 자본시장 소식을 전하는 시리즈입니다. 상하이·선전의 본토 시장부터 홍콩의 달러 유동성 창구, 대만의 반도체 밸류체인까지 중화권을 관통하는 자금의 흐름을 짚고,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중화권 시장의 현재 온도와 방향을 담습니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중국 바이오 기업이 글로벌 빅파마의 신약 후보물질 공급처로 부상하고 있다. 한때 중국 제약 산업은 복제약과 저비용 생산기지, 거대한 내수 판매시장으로 설명됐다. 그러나 이제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 기업의 초기·중기 파이프라인을 사들이며 중국 바이오의 위치도 달라지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약을 파는 시장에 그치지 않는다. 특허 만료를 앞둔 빅파마가 다음 성장동력을 찾는 신약 창고가 되고 있다.

중국 장쑤성 우시에 위치한 아스트라제네카 중국 커머셜 이노베이션센터(CCIC) (사진=로이터)


제약·바이오 데이터 업체 팜큐브에 따르면 지난해 중화권 바이오 기업의 라이선스아웃 거래 규모가 1377억달러(208조 9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전년도 거래 총액은 519억달러(78조원)으로, 일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올 상반기 기준 평균 거래 규모 역시 전년 대비 76% 커졌고, 평균 선급금은 두 배 수준으로 뛴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거래의 무대에도 중국 바이오가 전면에 등장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올해 1월 중국 CSPC제약그룹과 최대 185억달러(약 28조원) 규모의 비만 치료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애브비는 같은 달 룽창바이오와 고형암 이중항체 치료제 후보물질 RC148에 대해 최대 56억달러(약 8조5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은 이달 장쑤헝루이의약과 최대 152억달러(약 23조원) 규모의 전략적 협력 및 라이선스 계약을 발표했다. 글로벌 제약사가 중국 기업과 초기 파이프라인을 놓고 조 단위 옵션을 거는 장면이 더 이상 예외가 아니게 된 셈이다.

빅파마의 중국행을 재촉한 것은 다가오는 ‘특허절벽’이다. 특허절벽은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독점 판매 기간이 끝나 제네릭이나 바이오시밀러 경쟁에 노출되면서 매출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뜻한다. 글로벌 의약품 평가기관 이밸류에이트에 따르면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독점권 상실 위험에 놓인 처방의약품 매출은 3000억달러(454조원)를 웃돈다. 대표적으로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BMS·화이자의 항응고제 엘리퀴스, BMS의 면역항암제 옵디보 등이 대표 품목으로 꼽힌다.

특허 만료는 정해진 운명이지만, 이를 대체할 신약을 내부 연구개발만으로 확보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신약 개발 비용은 치솟고 임상 실패 위험은 여전한 데다 허가 문턱도 높아지고 있어서다. 블록버스터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후보물질을 더 빠르게 확보해야 한다. 빅파마가 초기 데이터를 갖춘 외부 파이프라인을 사들여 글로벌 임상으로 확장하는 전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이 수요를 파고든 곳이 중국 바이오다. 과거 중국 제약 산업의 경쟁력이 가격과 생산능력에 있었다면, 최근에는 이중항체, 항체약물접합체(ADC), 비만·대사질환, 면역질환 등 글로벌 시장에서 수요가 큰 영역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허가된 신약은 중의약을 제외하고 120개에 달했다.

방대한 환자군과 빠른 임상 진행 속도, 확대된 연구개발·위탁생산 인프라도 중국 바이오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2024년 기준 중국 기업이 시작한 글로벌 항암 임상 비중은 39%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중국이 글로벌 신약 파이프라인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혁신 거점으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편 중국 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도 라이선스아웃은 생존 전략이 됐다. 팜큐브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파마 자금조달은 지난해 820억달러(약 124조원)로 전년 대비 20% 줄었고, IPO 조달액은 30억달러(약 4조5000억원)에 그쳐 최근 10년 중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IPO와 M&A를 통한 투자금 회수가 막히면서 빅파마와의 계약은 중국 바이오 기업이 연구개발 자금을 확보하고 기술가치를 검증받는 사실상 핵심 통로가 된 셈이다.

물론 변수는 남아 있다. 가장 큰 리스크는 지정학이다. 미국은 중국 바이오 공급망과 임상 데이터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바이오보안법 등 미중 갈등은 중국 바이오 기업과 글로벌 제약사의 협력 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위탁개발생산(CDMO), 유전자 데이터, 연방정부 조달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규제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중국 바이오를 바라보는 시장의 계산법은 달라지고 있다. 과거 중국 바이오의 가치는 홍콩 증시와 벤처투자 시장의 온도에 좌우됐다. 이제는 빅파마가 얼마의 선급금을 지급하고, 어느 단계의 후보물질에 옵션을 거는지가 새로운 평가 잣대가 되고 있다. 대형 계약 대부분이 개발·허가·판매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마일스톤 중심이라는 점에서 발표 금액을 곧바로 현금 유입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 후보물질이 글로벌 임상과 상업화 단계에서 성과를 입증한다면, 중국은 생산기지나 판매시장을 넘어 신약개발 자본이 먼저 가격을 매기는 시장으로 올라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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