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념 투쟁 대신 실리"…'MZ 주축' 삼성 노조, 노동운동 변곡점

경제

뉴스1,

2026년 5월 24일, 오전 07:00

20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한 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 2026.5.20 © 뉴스1 김영운 기자


삼성전자(005930) 성과급 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삼성그룹 초기업 노동조합(초기업노조)의 모습은 기존 노동운동과는 확연히 구분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른바 MZ세대가 주축이 되면서 이념보다는 실리를,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즉각적인 보상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런 흐름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리형 노조'가 확산하면서 국내 노사문화도 달라질 전망이다. 그동안 노동운동을 통해 추구했던 연대나 노동 약자 보호 등도 뒤로 밀리면서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성과급' 앞세운 '실리형 노조' 부상

24일 업계에 따르면 초기업노조는 출범 당시부터 기존 노조와 다른 색채를 강조했다. 양대 노총(민주노총·한국노총)에 속하지 않은 독립 노조를 표방하며 정치 투쟁보다 실용적 노사 협상을 지향한다고 선언했다. 실제 초기업노조 집행부 역시 젊은 세대 중심이다. 현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각각 1991년생, 1985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노조 운영 방식 역시 과거와 달랐다. 초기업노조는 홈페이지 첫 화면에 조합원 수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세력 확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과거 노동조합들이 조합원 규모를 내부 관리 대상처럼 취급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21일 오후 2시 기준 7만850명이었던 조합원은 23일 오후 4시 기준 7만1235명으로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노조의 강경 투쟁 방식도 눈길을 끈다. 특히 협력업체 노동자나 비정규직 문제, 사회적 의제보다는 성과급 제도화와 보상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기존 노동운동 공식과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 배경에 30~40대 중심으로 노동시장 구조가 재편됐기 때문이란 평가를 내놓는다. 평생직장 개념이 약해지고 이직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조직의 장기적 미래보다 현재 자신의 기여에 대한 즉각적이고 확실한 보상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즉각적 보상 원해"…MZ 노동시장 변화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부분 산업의 주력 노동자들은 30~40대"라며 "기업과 장기적 신뢰 관계를 형성하며 상생하는 개념보다는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즉각적인 보상을 원하는 것이 젊은 세대의 공통적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 계층 전체의 연대 의식은 전보다 많이 약화했다"며 "특히 고소득 산업군에서는 기업 내 구성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 더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경쟁사 연봉과 성과급 수준이 실시간 공유되면서 직원들의 보상 요구도 한층 구체화하는 분위기다. 과거의 막연한 상대적 박탈감이 숫자 기반 비교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삼성 노조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념이나 연대보다 '내 몫을 정확히 달라'는 개인적 실리 중심이라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런 변화의 배경으로 △직장인 플랫폼 등을 통한 정보의 민주화 △활발해진 이직 시장 △기업의 성과주의 문화 확산 등을 꼽았다.

그는 "회사가 성과를 강조할수록 직원들도 자신의 기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수치로 요구하게 된다"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새로운 협상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실리형 노조'가 앞으로 반도체·정보기술·바이오 등 고숙련 산업을 중심으로 더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에서는 기존 전통적 노조 모델도 여전히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당분간 두 흐름이 공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노사 임금협상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가 시작되는 22일 수원 삼성전자 정문 앞에서 열린 임금교섭 장점협의안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구정한 삼성전자 동행노조 사무국장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2026.5.22 © 뉴스1 이호윤 기자


커지는 노노갈등…노동시장 양극화 더 커지나

일각에선 노동계 내부 양극화와 노노(勞勞) 갈등 심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성과 중심 보상 체계가 강화할수록 같은 노동자 내부에서도 임금 격차와 이해관계 차이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 조합원 찬반투표가 시작된 22일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중심 노조 조합원들은 집단 부결 운동에 착수하기도 했다.

구 교수는 "앞으로 노동운동에서도 공정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며 "실력주의 중심 공정성을 강조할지, 평등주의적 공정성을 중시할지를 두고 내부 논쟁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산업군만 지속해서 많은 보상을 얻는 방식이 적절한지, 아니면 상생과 분배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동조합의 역할이 실리 중심으로 재편되면 노동계 본연의 연대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포용적인 태도가 노동조합의 핵심"이라며 "사업장 밖에 있는 노동 약자까지 허용하는 노동조합이 됐을 때 교섭력도 크고 사회적 발언권도 커질 것"이라고 했다.

flyhighr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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