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환전소로 향하고 있다. 2026.5.26 © 뉴스1 박정호 기자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의 고환율·고유가·고금리 '3고(高)' 현상을 '경제 도약 과정에서 수반되는 성공의 비용'이라고 규정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 실장 주장의 취지에는 일부 공감하면서도, 현재의 3고 현상이 성장에 따른 수요 견인이 아닌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에 기인한 '비용 상승형(공급 측) 충격'에서 비롯된 만큼 해석에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가계부채가 2000조 원에 육박하고 연체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3고 장기화가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과 소비 위축을 불러와 내수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6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거래일 오후 3시 30분 주간종가 대비 12.9원 내린 1504.3원을 기록했다. 지난 22일 1520원대를 위협하던 달러·원 환율은 이날 안정세를 보였지만, 지난 15일 이후 6거래일 연속으로 1500원대를 넘어섰다.
앞서 달러·원 환율은 중동 전쟁 발발 이후 3월 말 1520원대를 돌파했다. 이후 1400원대로 안정되는 듯싶었지만, 이달 들어 재차 1500원을 돌파한 후 1520원을 위협하기도 했다.
시장금리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올해 초 3% 아래에서 출발해 이달 들어 3.6~3.7%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10년물은 한때 4.1%를 웃돌기도 했다. 현 기준금리(2.50%)를 100bp(1bp=0.01%p) 이상 웃도는 수준으로, 연내 최소 한 차례 이상의 기준금리 인상이 금융시장에 선반영된 모습이다.
국제유가 역시 중동 전쟁 발생 이후 90~100달러 선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6% 올라 1년 9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생산자물가도 전월 대비 2.5% 상승하며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생산자물가 급등은 통상 수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로 전이되는 만큼, 물가 압력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3고는 성공의 비용" 주장한 김용범…"취지 이해하지만, 오해 소지"
이런 가운데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3고 현상을 성공의 비용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김 실장은 최근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고환율·고유가·고금리를 "한국경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성공의 비용"이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위기의 전조가 아니라 도약의 마찰음"이라고 강조했다. 현재의 3고 현상이 위기 신호가 아니라는 진단이다.
특히 환율과 관련해 김 실장은 현재의 원화 약세가 외환위기 당시의 외화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코스피 급등으로 평가 차익을 일부 회수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매도세가 나타났고 이 같은 환전 수요가 환율을 밀어 올렸다고 분석했다. 경제의 취약성이 아니라 '성공이 만든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전문가들은 김 실장 주장의 취지에는 공감했지만, 현재의 3고 현상이 '성공의 비용'이라는 해석에는 의문을 표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수요가 늘어나 물가가 높아지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라면 성장에 따른 비용으로 볼 수 있지만, 지금은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이라며 "그 논리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환율 상승은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 중 하나"라며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 환율에 있는데 이를 가볍게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천소라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떤 취지인지는 이해하지만, 중동전쟁이나 원화 약세 등 근본 원인, 이후 정책 방향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시장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김 실장의 진단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후속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 교수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과거와는 다른 지표들이 나오고 있는 만큼 기존의 틀로 해석하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맞다"면서도 "그렇다고 고금리·고물가를 그냥 내버려둔다면 국민 대다수가 고통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진단에 그칠 게 아니라 후속 정부 정책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그 글이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금리·물가 동반 상승에 가계 압박…"골목상권 직격, 후속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3고 현상의 부담이 자산시장 혜택과 무관한 서민·소상공인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우석진 교수는 "소득이 늘거나 자산시장에서 혜택을 보지 못한 계층은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상환 부담이 늘고, 물가까지 뛰어 실질 소득이 떨어지면서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그러다 보니 골목 상권들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 규모를 감안하면 금리 추가 상승의 파장은 작지 않다. 한은 통계를 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93조 1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 말보다 14조 원 늘었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많은 대출을 안고 있는 가계 입장에서는 시장금리가 오르는 것만으로도 이자 부담이 커진다.
천소라 교수는 "같은 월급을 받더라도 물가가 오르면 구매할 수 있는 수량이 줄어들고, 금리까지 오르면 이자 부담이 늘어 소비 여력이 더 제한된다"며 "내수 측면에서 소비와 투자 여력이 동시에 위축되는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기업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0.62%로 지난해 5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중소법인 대출 연체율은 1.02%로 전월 대비 0.13%p 뛰는 등 중소기업·자영업자 부실이 두드러지고 있다.
김정식 교수는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경우 원화 대신 달러를 보유하려는 수요가 더 늘어나며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며 "환율을 속히 안정시킬 필요가 높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청와대는 김 실장 발언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정부는 현재 상황이 중소기업과 서민 경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취약계층 금융지원 확대, 주요 품목 수급·물가에 대한 상시 점검 및 안정조치, 부동산·외환시장의 안정적 관리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하반기 경제성장 전략과 내년도 예산안에 국민 부담 완화 과제들을 적극 반영할 예정"이라며 "예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대응 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min785@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