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으로 새로운 물류 시대를 열다..."물류도, 경영도 함께 살아가는 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27일, 오후 07:11

한국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약 830만개에 이른다. 국내 전체 기업의 99.9%에 이르는 비중이며 서울시 인구(2025년 기준 932만명)와도 맞먹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제조업 기준 매출액 1500억원 이상, 자산총액 10.4조원 미만 등)으로 성장한 기업 수(중견기업연합회 2023년 기준)는 5868개로 대폭 감소한다. 범위를 좀 더 좁혀 중견기업 중에서 매출 1조원 이상(2023년 기준)된, 말 그대로 이제는 어느 정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기업들은 148개에 불과하다.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견기업이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탄생하기 힘든 것일까. 이데일리에서는 성장률 0% 시대 위기를 벗어나고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매출액 1조원 중견기업 육성이 절실하다는 생각으로, 이들 기업 경영인들을 만나 경영 노하우는 물론 이 같은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들이 필요한 지 살펴볼 예정이다.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40여 년 전 대한민국 물류산업 현장에는 ‘물류’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대다수 기업이 사람의 힘으로 물건을 나르고 쌓는 하역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로 인한 막대한 시간적·금전적 비효율과 낭비는 고스란히 기업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대우그룹에서 지게차 영업을 담당하며 현장의 한계를 느끼던 한 청년이 있었다. ‘안 팔리는 지게차를 팔아보라’는 회사의 주문을 받고 선진국들의 물류 현장을 돌아보던 중 ‘파렛트’의 중요성을 직감했다. 파렛트가 물류 표준화의 밑바탕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국내 최초로 파렛트 풀링(Pallet Pooling·공동 다회용 파렛트) 시스템을 구축해 대한민국 물류 산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꾼 서병륜 로지스올그룹 회장의 이야기다. 파렛트를 개별 기업 소유가 아니라 전 산업이 함께 나눠 쓰는 공유 시스템을 도입해 국내 파렛트 시장을 연 인물이 그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서병륜 로지스올그룹 회장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 회장은 최근 서울 마포구 로지스올그룹 본사에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물자는 결코 한 회사나 한 지역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협력사와 공급망을 따라 실시간으로 연결돼 움직인다”고 강조했다. 지난 1984년 로지스올의 전신인 한국물류연구원을 설립하며 물류산업에 뛰어든 그는 물류가 단순한 화물 운송이나 보관이 아닌 국가 경제의 효율을 결정짓는 ‘화물 고속도로’이자 수많은 산업을 관통하는 핵심 인프라로 생각한다.

최근 물류산업은 호르무즈 해협 등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와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관세 장벽으로 인해 세계 무역 공급망(SCM)이 곳곳에서 막히고 정체되는 ‘뉴노멀’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기업들의 물류 경쟁력과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서 회장은 “과거의 물류가 단순히 ‘비용 절감’의 영역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리스크 관리 역량’으로 자리 잡았다”며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특성상 글로벌 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단순히 ‘빠른 물류’를 넘어 데이터를 활용한 리스크 분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 회장이 내다보는 물류의 미래는 디지털화를 넘어선 ‘피지컬 AI’와 ‘피지컬 인터넷’의 시대다. 그는 물류 현장의 자동화가 이미 단순한 수동 기계화를 넘어 로봇이 스스로 사고하고 최적의 동선으로 움직이는 피지컬 AI 시대로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서 회장은 “로지스올은 단순 무인화를 넘어 현장의 복잡한 변수까지 스스로 제어하는 고도화된 자동화를 이미 성공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다”며 “개별 창고의 자동화 수준을 넘어 고도화된 스마트 물류 거점들을 촘촘히 연결하는 ‘초연결 스마트 물류 생태계’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 과정이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적 합의가 필요하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공유하듯이 실제 물건과 트럭, 거점을 함께 나눠 쓰는 표준화된 공유 시스템으로 전환해야만 국가 전체의 물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서 회장이 바라보는 물류의 미래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서병륜 로지스올그룹 회장이 이데일리와의 인터뷰 이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파렛트 풀링으로 국내 물류를 혁신시킨 서 회장은 접이식 컨테이너 ‘폴드콘’(Foldcon)을 앞세워 이번에는 글로벌 물류 시스템 혁신에 도전장을 냈다. 폴드콘은 빈 컨테이너를 성인 작업자 2명이 손쉽게 접을 수 있는 제품이다.

지난 2024년 기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동한 연간 컨테이너 수송량은 1800만 TEU를 넘어섰다. 반면 유럽에서 아시아로 오는 물동량은 640만 TEU에 그친다. 1000만 TEU가 넘는 컨테이너가 빈 채로 배에 실려 오거나 항구 선적장 어딘가에 방치되고 있다.

이 컨테이너가 폴드콘이라면? 1개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공간에 4개를 쌓을 수 있다. 물류 비용을 4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서 회장은 이 폴드콘 개발에 20년을 매달려왔다. 그는 “대한민국을 혁신한 풀링 시스템을 세계 무대에 이식해 글로벌 공급망을 친환경적으로 재편하겠다”며 “접이식 컨테이너 폴드콘의 상용화를 통해 글로벌 해운 물류비와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로지스올은 현재 중국의 5개 법인을 비롯해 전 세계 20개국에 25개 해외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서 회장은 한국형 물류 표준화 모델을 글로벌에 적용해 물류 영토 확장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서 회장은 최근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소·중견기업의 성장 한계와 ‘피터팬 증후군’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수많은 기업이 매출이 늘어 중견기업 수준에 올라섰을 때 정부 지원은 단절되고 혜택이 줄어들다보니 중소기업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비판이다.

서 회장은 “우리 경제가 단기적인 이윤 추구에만 매몰되지 않고 파트너사 및 고객사와 동반 성장하겠다는 ‘공존공영’(共存共榮)의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며 “물류가 혼자하는 것이 아닌 공동의 시스템으로 만들어가듯 기업을 하는 것도 함께 나아가는 공존공영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서병륜 로지스올그룹 회장 인터뷰
서병륜 회장은…

△1949년 전남 광양 출생 △순천고등학교 △서울대 농과대학 농공학과 학사 △명지대학교 산업공학 박사 △대우중공업 △한국물류연구원 원장 △한국파렛트풀(KPP), 한국컨테이너풀(KCP), 한국로지스풀(KLP) 대표 △로지스올 그룹 회장 △한국파렛트컨테이너협회(KPCA) 회장 △한국콜드체인협회(KCCA) 회장 △아시아파렛트시스템연맹(APSF)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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