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PERI 원장 “재정·금융, 경제위기 막는 수단이자 위험 요인”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27일, 오후 03:53

[이데일리 이정윤 기자] “재정과 금융은 경제위기를 막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위험 요인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 위험 요인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PERI) 원장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중동발 긴장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재정과 금융이라는 정책 수단 자체가 새로운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대외 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국내적으로도 자본 흐름과 시장 구조의 취약성이 동시에 드러나면서 위기 대응 수단이 오히려 시장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진단이다.

안 원장은 특히 문제의 본질이 단순한 시장 변동성이 아니라 정책 환경 자체에 있다고 봤다. 재정과 금융이 원래는 경제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재정 여력 약화와 정책 운용 방식에 따라 오히려 리스크를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이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위기 대응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외국인 40조원 이탈, 개인은 신용으로 대응”

미국과 이란의 전쟁 발발 이후 국내 금융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로 외국인 자금의 급격한 이탈과 개인 투자자의 대응을 꼽았다.

안 원장은 “전쟁 이후 한 달여 동안 외국인이 약 40조원을 순매도했고 그 물량을 개인이 거의 그대로 받아냈다”며 “주식 신용잔고도 40조원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두 수치가 일치한다는 것은 개인 매수의 상당 부분이 신용에 기반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시장 하락 국면에서 취약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주가가 받쳐주면 괜찮지만 지금은 대외적으로 하락 가능성이 더 큰 상황”이라며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이 현실화하기 시작하면 금리 부담과 맞물려 리스크가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환율 변동성이 큰 것에 대해 안 원장은 “외국인이 계속 주식을 매각하다가 다시 매입으로 돌아서면 환율이 1500원대에서 1470원대로 떨어지는 흐름이 반복된다”며 “환율이 높은 구간에서 자금이 들어와 주가를 올리고 환율이 떨어진 상태에서 빠져나가며 주가 상승과 환차익을 동시에 가져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구조가 가능한 것은 개미로 일컬어지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동조 매매 때문”이라며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되면 환율은 상승 국면으로, 주가는 장기적으로 하락 국면으로 갈 수 있고 손실은 개인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 여력 줄어드는 韓…추경 방식도 재점검 필요”

중동 지역 긴장과 같은 외부 충격은 한국 경제에 빠르게 전이될 수 있는 구조인 만큼 재정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안 원장은 “재정은 금융시장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면서도 “지금은 그 재정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하반기 재정 여건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최근 초과 세수는 반도체·자동차 등 일부 산업 호조에 따른 일시적 요인”이라며 “이를 재정 여력으로 축적하지 않고 사용할 경우 하반기에는 세수 결손과 함께 재정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운용 방식에 대해서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안 원장은 “초과 세수를 활용한 추경이 반복되면서 국채 상환보다 지출이 우선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이는 국가재정법 취지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항상 추경을 추진할 때 금액을 먼저 정하고 용도를 맞추는 방식이 반복된다”며 “이 과정에서 부처가 사업을 만들어내는 비효율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현금성 지원 중심의 재정 정책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그는 “보편적 현금 지급은 효과가 제한적일 뿐 아니라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며 “결국 저소득층이 더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은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하는데 오히려 리스크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장기적으로는 ‘고령화’를 재정에 가장 큰 부담 요인으로 꼽았다. 안 원장은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이며 국민연금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는 구간에 들어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금뿐 아니라 의료 지출 증가도 큰 부담”이라며 “국방비 중심의 미국과 달리 한국은 연금과 의료가 재정 압박의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산업 기반 흔들리면 더 큰 문제…데이터 기반 정책 필요”

한국 경제의 가장 취약한 리스크 요인으로는 산업 기반 약화를 지목했다. 안 원장은 “결국 경제는 기업이 생산하고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구조인데 여러 정책과 외부 요인이 기업 활동을 제약하면 성장 동력 자체가 약화한다”고 말했다.

현재 반도체와 자동차를 제외한 상당수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고 규제나 세제 부담 때문에 기업들이 국내를 떠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고 했다.

앞으로 한국의 재정·금융 정책 대응 방식에 대해서는 데이터 활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 원장은 “한국은 카드·전력 사용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경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며 “이를 활용하면 산업별·지역별로 정밀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처럼 소득 하위 70%에 일괄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려운 계층을 선별해 지원해야 한다”며 “이미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얼리 워닝 시스템(Early Warning System)을 구축해 경제 상황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해야 한다”며 “현재는 이러한 데이터 활용 역량이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6월 16일·17일 양일간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17회 이데일리 전략포럼의 ‘PERI 스페셜 심포지엄’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안 원장은 조세·재정과 통화·금융이라는 정책의 두 축을 함께 점검하며 복합 위기 국면에서 정책 수단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재정과 금융이 단순한 경기 대응 수단을 넘어 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성장 기반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심포지엄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과제와 정책 대응 방향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안 원장은…

△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 대우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 서울시립대 교수 △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 한국재정학회 회장 △ 19대 국회의원 △ 대통령 경제수석·정책조정수석 △ 정책평가연구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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