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2026.4.23 © 뉴스1 김민지 기자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투자 판단 기준이 경기·수익성 중심에서 안보·공급망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한국은행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이 31일 공개한 '경제안보 패러다임의 부상과 우리나라 투자의 구조적 전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경제에서는 최근 설비투자의 경기 동조성 약화, 해외직접투자(FDI) 확대, 국방·방산 투자 증가라는 세 가지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한은은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경제안보 패러다임'의 부상을 지목했다.
2017년 이후 미·중 패권경쟁,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병목,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면서 수출통제와 보조금, 산업정책 등 경제적 수단이 안보 목적에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안보 논리는 기업과 정부의 경제적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진단했다.
실제 우리나라 설비투자는 과거보다 경기 흐름과의 연관성이 크게 약해졌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설비투자 증가율의 상관계수는 2020년 이전 0.76에서 이후 0.17로 낮아졌다. 경기 상황보다 공급망 안정성과 지정학적 위험 등 비경제적 요인이 투자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는 의미다.
한은이 설비투자 증감률을 요인별로 분해한 결과 안보·글로벌 요인(GPR·TPU·GSCPI·미국 장기금리)의 기여 비중은 2001~2019년 평균 29.6%에서 2020년 이후 43.9%로 14.3%포인트(p) 확대됐다.
특히 무역정책 불확실성의 기여도는 8.7%p, 지정학적 리스크는 4.0%p 각각 높아졌다.
주력 산업에서는 변화가 더욱 두드러졌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투자 결정에서 안보·글로벌 요인의 비중이 2016~2019년 평균 33.1%에서 2020년 이후 48.7%로 상승했다. 자동차 등 운송장비 제조업 역시 같은 기간 25.9%에서 50.9%로 확대됐다.
과거에는 메모리 업황 사이클과 가동률, 수출 등 경기 요인이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였다. 그러나 2020년 이후 미·중 무역분쟁과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리스크 등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투자 판단 기준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황설웅 한은 조사국 구조분석팀 과장은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 모두 투자 결정에서 안보·글로벌 요인의 비중이 시장·경기 요인과 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높아졌다는 의미"라며 "기업이 투자 결정을 할 때의 메커니즘 자체가 구조적으로 변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해외직접투자 확대에도 경제안보 요인이 핵심 동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지정학적 위험이 커질 경우 국내 설비투자는 위축되는 반면 해외직접투자는 확대되는 '자본의 대외 전환' 현상이 나타났으며, 글로벌 공급망 압력이 높아질 때는 국내외 투자가 동시에 증가하는 패턴이 관찰됐다는 것이다.
황 과장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면 국내 설비투자는 위축되는 반면 해외직접투자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설비투자의 경기 동조성 약화, 해외직접투자 확대, 군비지출 증가는 경제안보 패러다임의 부상이라는 단일한 구조적 동인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한은은 해외투자 확대가 국내 제조기반 공동화와 고용 유발효과 둔화 등의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보조금 수혜와 비관세장벽 우회, 글로벌 기술표준 경쟁 참여, 대외순자산 축적 등 긍정적 효과도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경제안보 패러다임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가치사슬(GVC) 상단에서의 협상력 활용과 기술동맹 네트워크 강화, 첨단산업 클러스터 조성 및 핵심 제조공정의 국내 잔류 유인 확대, 고숙련 인재 양성을 통한 무형자산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thisriver@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