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화상병(충북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올해 과수화상병이 과거 발생 이력이 없던 경기 고양, 세종, 충북 보은, 충남 공주 등에서 새로 확인되는 등 확산세가 예년과 다른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식물이 타들어 간 것처럼 검게 변해 말라 죽는 과수화상병은 잠복기가 길어, 한 그루에서만 증상이 드러나도 같은 과원 안 다른 나무들까지 이미 감염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방역 당국은 발병이 확인되면 주변 넓은 구역의 나무를 통째로 제거·매몰하는 강도 높은 조처를 하고 있고, 그만큼 농가의 경제적 피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농정당국은 예찰 강화와 예방 약제 살포 시기를 앞당기는 등 방역의 고삐를 죄고 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발생한 과수 화상병 대응책부터 기후 위기 대책까지 머릿속이 꽉 차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비 피해 면적 77%↑…신규 발생만 4곳
1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전국 39개 농가에서 과수화상병이 확인됐으며, 피해 면적은 17.9헥타르(㏊)에 이른다.
전년 같은 기간 27개 농가, 10.1㏊와 비교하면 농가 수는 44%, 피해 면적은 77% 늘어난 수치다.
특히 올해에는 경기 고양, 세종, 충북 보은, 충남 공주 등 과거 발생 이력이 없던 지역에서까지 확진 사례가 나오면서 방역 난도도 크게 높아졌다.
농진청은 지난달 19일 과수화상병 위기관리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하고 비상 대응에 나선 상태다. 경계는 국가 재난 수준의 확산에 대응하는 최상위 단계 '심각' 바로 아래로, 사실상 평시 기준 최고 수준의 경보로 볼 수 있다.
올해 피해 면적은 과수화상병의 주요 감염 작물인 사과 재배면적 약 3만3000㏊와 비교하면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농정당국이 대응 수준을 끌어올린 것은, 과수화상병이 긴 잠복기와 높은 치명률을 동시에 가진 병해라는 점 때문이다. 올해 과일 수급에는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지금 확산을 제대로 막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과수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과수화상병은 발병 시 사과·배나무 등 장미과 과수를 고사시키는 세균성 식물 전염병으로, 비와 바람은 물론 곤충과 사람의 이동을 통해 다른 과수원으로 빠르게 퍼진다.
특히 3~10년에 이르는 긴 잠복기가 가장 큰 문제로, 한 그루에서 증상이 드러났을 때는 이미 같은 과원과 주변 지역에 병원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잠복 감염 특성 때문에, 방역 당국은 한 그루가 확인되더라도 넓은 범위를 한꺼번에 제거·매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과수화상병이 한 번 유행하면, 질병 그 자체보다는 발병 농원뿐 아니라 주변 농원의 과수 제거·매몰까지 이어지면서 지역 내 갈등, 장기간 재배 금지 조치, 이에 따르는 보상 문제 등이 한꺼번에 불거진다.
최근 6년간(2020~2025년) 피해 농가에 지급된 손실보상금만 약 1800억 원에 달한다.
마치 도심 상가에서 가게 한 곳에서 난 큰 화재로 상가 전체가 장기간 영업을 멈추는 것처럼, 몇 그루의 과수화상병이 지역 과수 산업 기반을 통째로 흔드는 셈이다.
송미령 장관이 24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사과 재배 과원을 방문해 과수화상병 사전 예방 및 비료 등 농기자재 공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뉴스1
치료제 없는 과수화상병…예방 농약이 최선, 내년부터 국내 최적화 농약 투입
과수화상병은 이미 감염된 나무를 되살릴 수 있는 '치료제'가 없어, 현재로선 발병 이전에 세균 밀도를 낮춰 감염·발병 가능성을 줄이는 예방용 농약이 사실상 유일한 방어 수단이다.
지금 농가에서 사용하는 약제도 대부분 꽃피기 전·개화기 등에 살포해 감염 가능성을 줄이는 역할에 그칠 뿐, 나무 내부에 잠복한 병원균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그간 이러한 약품 원료는 주로 해외에 의존해 왔으나, 내년부터는 국내에서 개발된 약품이 현장에 투입될 전망이다.
농진청은 과수화상병 대응을 위해 2020년부터 과수화상병균을 겨냥한 약품 연구에 나서 2024년 개발에 성공했다.
해당 약품은 세균을 죽이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농약에 포함된 박테리오파지는 과수화상병균만을 표적으로 삼는 계통으로, 과수화상병균이 여기에 감염되면 파지가 균 내부에서 증식하면서 병원균의 기능을 떨어뜨려 과수원 내 감염·발병 가능성을 낮추는 원리다.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관계자는 "해당 약품의 감염 억제 효과는 약 75% 이상으로, 기존 미생물 농약의 51.1%보다 개선됐다"며 "특히 한국에서 발견되는 과수화상병 균에 더 효과가 좋다는 것을 국제공동연구로 확인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약품을 대량 생산,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박테리오파지 증식이 필요한데, 박테리오파지 증식을 위해서는 과수화상병 균을 먹이로 주어야 한다.
과수화상병 균은 식물방역법상 검역 대상이어서 발견 시 제거, 통제가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연구용 활용만 허용돼 왔다. 상용화를 위해 국내 균주를 생산용으로 활용하고, 시설 간 이동시키는 과정은 규제의 회색 지대에 놓여 사실상 막혀 있었다.
이에 농진청은 감사원과 논의해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이 유출 방지 절차와 통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전제로, 공동연구에 참여한 농약 제조 전문기업에 과수화상병균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관계자는 "현재 환경 잔류·영향, 다른 동·식물 유해성 여부 등에 대한 시험이 완료돼 연내 농약 등록을 마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이르면 내년에 현장 투입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농진청은 이러한 예방 약품뿐 아니라 과수화상병 위험도 예측 시뮬레이션, 발병 전 진단 기술, 과수화상병 저항 품종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승돈 농촌진흥청장이 지난 4월 22일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사과 과수원을 찾아 과수화상병 예방을 위한 개화기 약제 방제 상황을 살피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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