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잡았지만 중저신용자 이자 부담…예대금리차만 키웠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6월 01일, 오전 06:30

[이데일리 최정훈 김국배 기자] 금리 경쟁이 급격히 위축된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들이 더 이상 가계대출을 늘릴 유인이 사라지면서 과거처럼 금리를 낮춰 우량 차주를 유치하려는 경쟁도 빠르게 약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선택지가 적은 중저신용자의 금리 부담 완화 통로까지 함께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금융당국은 올해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기존 1.7%에서 1.5% 수준으로 낮춘 데 이어 주택담보대출 총량 관리와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했다. 서울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확대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그 결과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세는 진정됐지만 은행들의 영업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총량규제가 바꾼 은행 영업 방식

과거에는 대출을 늘려야 수익이 증가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예금을 끌어오고 금리를 낮춰 우량 차주를 유치하려는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가계대출 총량이 사실상 정해진 상황에서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을 더 취급하기보다 목표 범위 안에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전에는 금리를 낮춰서라도 우량 차주를 확보해야 했지만 지금은 총량 관리가 우선”이라며 “금리를 낮춰 대출 수요가 몰리면 오히려 목표치를 초과할 수 있어 공격적인 금리 인하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수신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출을 늘릴 수 없으면 예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필요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 예금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올해 4월 기준 3.04%로 지난해 2월 이후 14개월만에 3%대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권의 자금 조달 필요성이 줄어든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대출금리는 쉽게 내려가지 않고 있다.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금융채) 5년물 금리는 지난 28일 연 4.28%를 기록하며 2023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변동형 주담대 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6개월물 금리 역시 연 3.00%를 넘어 1년 4개월 만에 3%대에 진입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 이후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데다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공식화하면서 시장금리가 빠르게 반등한 영향이다. 일부 은행은 은행채 금리를 주담대 금리에 매일 반영하고 있어 조달 비용 상승이 곧바로 대출금리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5대 시중은행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 상단은 최근 연 7%를 다시 넘어섰다.

은행권 관계자는 “예금금리는 올릴 유인이 줄었지만 대출금리는 시장금리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하향 조정 폭이 제한적”이라며 “예전처럼 고객 확보를 위해 금리를 낮추는 경쟁이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실제 5대 시중은행의 정책서민금융 제외 가계예대금리차는 지난 3월 평균 1.51%포인트까지 확대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4월 1.39%포인트로 소폭 축소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금융권에서는 총량 규제로 수신 경쟁 유인이 약해진 반면 시장금리 상승으로 대출금리는 쉽게 낮아지지 않으면서 금리 경쟁이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고 보고 있다.

◇갈아타기 막히자 취약차주 부담

이 같은 환경은 대출 갈아타기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대출 갈아타기 플랫폼은 은행들이 우량 차주를 확보하기 위해 금리를 낮출 때 가장 큰 효과를 낸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출 확대 유인이 약한 상황에서는 경쟁 촉진 기능도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대출 갈아타기 플랫폼을 통한 대환대출 이용자는 2024년 19만4821명에서 2025년 12만1016명으로 37.9% 감소했다. 같은 기간 대출 이동 규모도 13조9833억원에서 6조4581억원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문제는 금리 경쟁 약화의 충격이 중저신용자에게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신용자는 여러 금융사의 상품을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찾을 수 있지만 중저신용자는 선택 가능한 금융사 자체가 제한적이다.

금융권에서는 최근 신용대출 대환 시장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차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을 가능성도 거론한다. 신용대출 평균 금리 인하 폭은 확대됐지만 실제 이용자 수는 감소하고 있어서다. 실제 신용대출 평균 금리 인하 폭은 지난해 1분기 1.57%포인트에서 올해 1분기 2%포인트 안팎으로 확대됐지만 이용자 수는 3만4050명에서 1만8927명으로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승인 가능성이 높은 차주 위주로 시장이 남아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최근 시중은행들이 저축은행·캐피탈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대환 전용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는 것도 중저신용자의 금리 부담 완화 수요가 여전히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개별 상품 확대만으로는 총량규제에 따른 시장 전반의 경쟁 약화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총량 규제가 강한 상황에서는 은행들이 우량 차주 위주로만 대출을 집중하면서 결국 서민·중저신용자가 더 높은 금리의 2금융권으로 밀려나는 역설이 생긴다”며 “포용금융의 수혜 대상이 돼야 할 사람이 오히려 규제의 음지로 밀려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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