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파킨슨병도 미리 알 수 있다”…마이크로바이옴 시대 성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6월 04일, 오후 06:50

[이데일리 김지완 기자] “앞으로는 질병이 생긴 뒤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위험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의료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그 변화를 이끌 핵심 기술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장내 미생물이 질병 예측과 예방, 나아가 치료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대규모 인체 데이터가 결합되면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실험실을 넘어 실제 의료현장으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른쪽부터)루스 E. 레이 독일 막스플랑크 생물학연구소 교수, 롭 나이트 미국 UC샌디에이고 마이크로바이옴 혁신센터장(교수), 스타니슬라프 두스코 에를리히 영국 UCL 퀸스퀘어 신경학연구소 교수, 에란 시걸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 컴퓨터과학·응용수학과 교수. (사진=김지완 기자)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 인체 마이크로바이옴 컨소시엄(IHMC) 2026 기자감담회가 열고, “마이크로바이옴은 더 이상 건강기능식품이나 유산균 수준의 개념이 아니라 질병을 예측하고 개입하는 새로운 의료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질병 원인 규명 단계 진입

루스 E. 레이(Ruth E. Lay) 독일 막스플랑크 생물학연구소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가장 큰 변화로 ‘상관관계에서 인과관계로의 진화’를 꼽았다.

레이 교수는 “과거에는 특정 질환과 마이크로바이옴 사이의 연관성을 관찰하는 수준이었다”며 “이제는 어떤 미생물이 어떤 유전자와 분자를 통해 숙주와 상호작용하는지 규명하고 있으며 이를 치료 타깃으로 활용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실제 학계에서는 비만, 당뇨병, 자가면역질환, 신경질환, 암 등 다양한 질환에서 특정 미생물이 질병 발생에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롭 나이트(Rob Knight) 미국 UC샌디에이고대학교 마이크로바이옴 혁신센터장은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 유전체보다 더 강한 신호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며 “무엇보다 유전자는 바꿀 수 없지만 마이크로바이옴은 식습관과 환경을 통해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파킨슨병 예측 가능성 제시

가장 주목받은 발표 중 하나는 파킨슨병과 마이크로바이옴의 연관성이다.

스타니슬라프 두스코 에를리히(Stanislav Dusko Ehrlich) 영국 UCL 퀸스퀘어 신경학연구소 교수는 “현재 건강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장내 미생물 구성이 파킨슨병 환자와 매우 유사한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임상 증상 역시 환자군과 더 가까운 특징을 보인다”며 “마이크로바이옴을 통해 향후 질병 위험을 예측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에를리히 교수는 이러한 원리가 파킨슨병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암을 포함한 다양한 질환에서도 건강한 사람 중 미래 위험군을 선별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중요한 것은 위험을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식습관 개선 등을 통해 실제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연구에서는 건강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일수록 질환 관련 마이크로바이옴 패턴이 적게 나타나며 질병이 발생하더라도 중증도가 낮은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AI 시대 최대 수혜 분야”

AI와 마이크로바이옴의 결합도 주요 화두였다.

에란 시걸(Eran Segal)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 교수는 “AI 성능은 결국 데이터 품질에 의해 결정된다”며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서도 특정 국가와 인종의 데이터만 사용하면 편향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처럼 지금까지 글로벌 데이터에서 상대적으로 덜 대표됐던 국가들의 연구가 확대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한국은 향후 마이크로바이옴 AI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시걸 교수 연구팀은 현재 약 1만5000명을 대상으로 8년 이상 추적 관찰하는 대규모 종단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유전적 요인보다 환경적 요인에 가깝다”며 “환경을 바꾸면 미생물도 바뀌고, 미생물이 질병에 영향을 준다면 결국 질병 역시 예방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마다 마이크로바이옴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음식, 같은 약물도 서로 다른 효과를 낼 수 있다”며 “미래 의료는 개인 맞춤형 마이크로바이옴 분석을 기반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전자보다 영향력 커”…비만 치료 새 가능성

석학들은 비만을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의 가장 유망한 분야 중 하나로 꼽았다.

시걸 교수는 특정 균주의 유무에 따라 체중 차이가 10kg 가까이 나타나는 사례를 소개하며 “현재 마른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특정 균주를 활용해 비만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간 유전정보만으로는 최근 수십 년간 급증한 비만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마이크로바이옴은 환경 변화와 비만 증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상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의학박사) 겸 바이오미 대표이사. (사진=김지완 기자)


연구진은 향후 특정 균주를 활용한 프로바이오틱스, 식이 개입, 포스트바이오틱스 등을 활용한 치료 전략이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이제 단순한 장 건강 개념을 넘어 암, 비만, 신경질환,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질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향후 AI·정밀의료와 결합해 의료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윤상선 연세대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다른 연구 분야에 비해 선진국과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은 분야”라며 “한국 연구자들도 이미 국제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광표 서울대 교수는 “이번 학회를 통해 확인한 것은 한국이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서 중요한 플레이어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예방의학과 정밀의료 시대에 한국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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