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 효자였는데…은행권 채용문 좁아진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6월 07일, 오후 02:22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한때 ‘취업 성지’로 불리며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 가운데 하나였던 은행권이 더 이상 ‘일자리 효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는 가운데 정규직 직원은 줄고 신규 채용 규모도 감소하고 있어서다. 그 빈자리는 기간제 근로자와 디지털 기술이 채우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비대면 금융 확산 속에 은행권 고용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정규직 직원 수는 총 4만8237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 말(5만3173명)과 비교하면 4936명(9.3%) 감소한 규모다. 반면 기간제 직원은 같은 기간 4101명에서 5973명으로 1872명(45.6%) 증가했다. 전체 직원 가운데 기간제가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 7.2%에서 지난해 11.0%로 확대됐다.

전체 임직원 수도 감소세다. 4대 은행 임직원 수는 2021년 말 5만7274명에서 지난해 말 5만4210명으로 줄었다. 최근 5년 사이 3000명 넘는 인력이 은행권을 떠난 셈이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졌다. KB국민은행 정규직은 2021년 1만5503명에서 지난해 1만2924명으로 2579명 감소했다. 같은 기간 기간제 직원은 1580명에서 2465명으로 885명 늘었다. 정규직 감소 폭과 기간제 증가 규모 모두 4대 은행 가운데 가장 컸다. 하나은행 역시 기간제 직원이 58.7% 증가했고 우리은행도 54.2% 늘어났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인력 재편이 은행권의 실적 호황기와 맞물려 진행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4대 은행 당기순이익은 13조9909억원으로 전년 대비 4.9% 증가했다. 통상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 채용이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은행권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은행들이 성장보다 비용 효율화와 생산성 제고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규 채용 역시 감소세가 뚜렷하다. 4대 은행 신규 채용 인원은 2022년 1663명에서 2023년 1880명으로 늘었지만 이후 2024년 1320명, 지난해 1170명으로 감소했다. 불과 2년 만에 채용 규모가 37.8% 줄어든 것이다. 최근에는 일반 공채 자체를 축소하는 은행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상반기 채용에서 일반 공채를 진행하지 않고 지역인재와 보훈 특별채용 중심으로 채용을 실시했다.

반면 희망퇴직 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해 희망퇴직자는 총 2470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24% 증가한 규모로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많다. 희망퇴직 대상도 점차 젊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희망퇴직 신청 가능 연령을 1986년생까지 확대했고 하나은행과 농협은행도 만 4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퇴직을 실시했다.

기간제 증가가 모두 단순 비정규직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퇴직 후 재고용 인력과 전문계약직, 고객지원 인력 등이 포함돼 있다. 다만 은행권이 과거처럼 정규직 중심으로 인력을 충원하기보다 필요한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평가다.

은행권에서는 이 같은 변화의 배경으로 디지털 전환을 꼽는다. 모바일뱅킹 이용이 일상화되면서 과거처럼 대규모 영업점 인력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최근 조사에서는 최근 3개월 동안 은행 영업점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소비자가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점포 감소도 이어지고 있다. 4대 은행 점포 수는 2023년 말 2826개에서 2024년 말 2779개, 지난해 말 2685개로 줄었다.

은행들은 대신 AI와 디지털 분야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고객 상담, 여신 심사 자동화, 내부 업무 효율화 시스템 구축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 수작업으로 처리하던 업무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면서 인력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전에는 점포 확대와 함께 대규모 공개채용이 이뤄졌지만 지금은 모바일 채널이 주력 창구가 됐다”며 “앞으로는 영업 인력보다 IT·AI·데이터 인력을 중심으로 선별 채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수조원대 순이익을 기록하는 은행들이 사회적 책임인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는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규직은 줄고 기간제는 늘어나는 흐름이 고착화될 경우 청년층이 체감하는 고용 환경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은행권이 청년층 선호 직장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고용에 대한 사회적 기대도 여전히 크다”며 “생산성 향상과 고용 창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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