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정책 효과는 컸다. 가격이 오르지 않으니 통계로는 물가 상승세가 둔화했고, 정부 지지율도 올랐다. 하지만 효과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기업들은 원가 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생산을 줄였고 시장에서는 상품이 사라졌다.
결국 통제가 풀린 후 억눌렸던 가격은 더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5%였던 소비자물가를 3%대로 끌어내렸지만, 가격 억제 ‘청구서’가 돌아온 후 물가는 14.7%까지 상승했다.
한 정부의 성패는 성장률보다 물가에서 먼저 판가름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각국의 정부가 마주하는 고민은 다르지 않다. 급등하는 물가를 그대로 두자니 국민 부담이 커지고, 인위적으로 누르자니 부작용이 걱정이다. 이에 대부분의 정부는 시장의 가격 상승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속도를 늦추는 방법을 선택하곤 한다.
우리 정부도 현재 비슷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동 전쟁 이후 국제유가 급등이 물가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행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가 대표적이다. 정유사의 공급 가격에 상한을 고시해 단기적으로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지난 3월 13일부터 시행 중이다.
석유최고가격제 역시 효과를 내고 있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만약 석유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상승률은 3.7%까지 치솟았으리라는 게 정부 계산이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이 남는다. 사라진 물가는 어디로 갔을까. 국제유가가 오르면 그 부담은 반드시 누군가 져야 한다. 소비자가 부담하지 않으면 정유사가, 정유사가 아니면 정부 또는 다른 경제주체가 부담을 안는다. 상승 비용이 증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석유최고가격제는 지금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시장의 다른 참여자나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넘겨놓는 역할을 한 셈이다.
물론 정부의 가격 억제를 통한 물가 안정 정책은 필요한 일이다. 중동 전쟁 이후 급격한 유가 상승은 경제 전반의 충격으로 퍼져 나갈 수 있다. 특히 에너지 가격은 물류와 식품, 서비스 가격으로 연쇄 전이된다. 정부가 일시적으로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
문제는 예외적인 조치가 일상적인 정책으로 굳어질 때다. 가격 신호가 왜곡된 상태로 장기간 이어지면 우리 경제는 이에 적응할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소비자는 비용 상승을 체감하지 못하고 기업도 구조 개선을 미루게 된다는 얘기다.
정부도 이를 걱정해 석유 최고가격제 해제 시점을 보고는 있다. 호르무즈 통항이 재개돼 석유 수급 불안이 해소되거나 국제유가가 구조적으로 안정됐다고 판단하면 석유최고가격제 해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00일을 넘긴 중동전쟁은 종전의 출구를 찾지 못하며 장기적인 지정학적 이슈가 될 모양새다. 종전만을 기다리는 건 안이한 대책이다.
경제는 생각보다 정직하다. 오늘 보이지 않는 비용은 먼 훗날 더 큰 비용의 청구서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가격 자체를 억누르는 물가 대책을 벗어나 장기적인 물가 관리를 위한 시스템과 정책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서울 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