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審)봤다!]“유행 좇지 않는 강단 있는 ‘언더독’ 발굴”

경제

이데일리,

2026년 6월 09일, 오전 10:00

[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벤처캐피탈(VC)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펀드 조성, 투자 집행, 포트폴리오사의 성장 지원, 엑시트까지 업무 전반을 끌고 가는 ‘수석 심사역’이 꼽힙니다. ‘심(審)봤다!’는 VC 업계의 산삼 같은 존재들인 수석 심사역들의 생각을 담은 시리즈입니다. 심사역을 뜻하는 살필 심(審)의 의미도 있습니다. 각 하우스 수석 심사역과 만나 그들이 단순히 딜(deal) 소싱을 넘어 펀드 전체 전략과 운영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들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강단 있는 언더독(underdog) 창업자를 응원한다. 이들은 유행보다 본질을 붙든다. 또 조용하지만 그릿(grit·장기적 목표를 향한 끈기와 열정을 의미) 있게 꿈을 밀어붙인다. 이런 사람에 투자한다.”

사지혜 제트벤처캐피탈(ZVC) 이사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투자 철학이다. 기술은 끊임없이 바뀐다. 그러나 사업이 지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사 이사는 이런 맥락에서 기술이 아닌 ‘사업’에 투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로 어떤 가치를 만들고, 어떻게 돈을 벌지 명확한 회사에 투자한다”며 “투자 후 30년을 더 같이 갈 수 있는, 고객에게 확실한 가치를 줄 회사를 찾고 있다”고 강조했다.

ZVC는 LY 주식회사(라인야후) 산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이다. 사 이사는 이곳에서 일본과 미국 시장을 겨냥하는 국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다. 한국에 지사·법인을 둔 미국 회사도 집중적으로 본다. 그가 여러 시장을 동시에 보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역’이라는 개념 자체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어서다. 그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 문을 동시에 두드리고 있다”며 “반대로 미국에 본사를 둔 회사가 한국에 연구개발(R&D) 거점을 두는 경우도 흔해졌다”고 설명했다.

사지혜 ZVC 이사. (사진=ZVC)




◇끈기있게 사업 놓지 않은 팀에 투자



그렇다면 사 이사가 말하는 ‘조용하지만 그릿 있게 자신의 꿈을 밀어붙이는 창업자’란 누구일까. 사 이사는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집중하며 끈기있게 답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 기반 핀테크 기업 해빗팩토리가 대표적이다. 회사는 데이터와 AI로 보험 중개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자 한다. 전통산업인 보험업에서 10년이 넘는 세월 간 비즈니스를 이어갔다. 회사는 2027년 상장을 목표로 지난해 말부터 준비에 착수했다. 삼성증권과 KB증권을 기업공개(IPO) 공동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다.

그는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도 투자했다. 블루포인트는 딥테크 액셀러레이터(AC)다. 딥테크 영역에서 지난 10년간 네트워크와 기술 검증 역량을 쌓았다. 그는 “딥테크 투자는 기술을 보는 눈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다르다”며 “융합적인 안목, 초기 기술에 대한 빠른 접근, 사업화까지 밀어주는 실행력이 함께 따라야 하는 만큼 블루포인트에 전략적으로 투자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또 좋은 창업자가 먼저 찾아오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라인야후 그룹 CVC로 다진 그룹사 파트너십 기회와 350개 이상 되는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자산으로 삼고 있다.

사 이사는 일부러 첫 만남 때 직접 스타트업 사무실을 찾는다. 팀이 지닌 에너지와 분위기, 일하는 방식을 자연스레 느끼기 위해서다. 그는 “창업자들도 숫자나 조건 이전에 투자자가 보여주는 태도에서 진정성을 엿본다”고 부연했다.

이런 측면에서 반드시 함께 하고 싶은 딜(deal)이 있을 땐 창업자 일정에 맞추려 노력한다. 연말과 연초 VC 업계가 개점휴업 상태일 때도 마찬가지다. 개인휴가로 미국에 머물던 당시 새벽 2시에 창업자와 콜을 진행하며 투자 논의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는 “좋은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AI 시대,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가 경쟁력



AI가 일으킨 바람은 VC 업계에도 불고 있다. AI가 투자 실사 리포트를 작성하고 시장 분석을 자동화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사 이사는 “AI가 파고들수록 역설적으로 VC업이 더욱 사람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며 “숫자와 보고서로는 보이지 않는 △실행력·끈기 △어려운 순간에 내리는 결정 △중요한 기회를 잡는 관계 형성 등 앞으로 이런 인적 요소가 VC 투자에서 변수로 작용할 거라 본다”고 내다봤다.

사 이사는 이런 ‘사람의 게임’이 글로벌 단위로 확장되고 있다고 짚었다. 수많은 국내 VC가 미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때 얼마나 깊고 신뢰도 높은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그는 VC가 앞으로 단순히 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신뢰 네트워크를 얼마나 구축하고 있느냐가 주요 자산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후배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라고 권했다. 그는 “내향적이라서, 일정이 애매해서, 아직 준비가 덜 돼서라는 이유로 망설이지 말고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네트워크와 시각을 쌓을 필요가 있다”며 “특히 여성 후배들이 완벽할 때까지 기다리다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정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도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투자라는 일은 숫자와 자료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 많은데, 이 일을 오래 업으로 삼고 싶다면 현업을 경험해보길 권하고 싶다”며 “창업자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진짜 신뢰를 얻기 위해 사업을 만들어가는 치열함을 스스로 경험하면 좋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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