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미나이 생성형 이미지.)
◇AI 불장에 빅테크 기습까지…실트론·배민 셈법 '백지화'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의 사업 재편(리밸런싱) 과정에서 핵심 매물로 꼽혔던 반도체 웨이퍼 제조업체 SK실트론의 매각 협상이 현재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8일 예정했던 임시 이사회가 돌연 취소되면서 이같은 관측에 더욱 무게를 싣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두산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6개월 가까이 수면 아래에서 실사와 세부 조건 협상이 이어졌으나, 아직 본계약 도장을 찍지 못했다. 당초 시장에서 추정한 SK실트론의 기업가치는 5조 원 안팎이다.
여기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 것이 바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폭발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귀환이다. SK실트론은 글로벌 탑3 수준의 12인치 웨이퍼 생산 능력을 갖춘 알짜 기업이다.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돈을 버는 SK하이닉스와 달리, SK실트론은 반도체 생산량 증가에 따른 웨이퍼 물량공급으로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실적이 시차를 두고 웨이퍼 수요 폭발로 이어질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SK그룹 내부에서도 미래 성장의 핵심 자산이자 하이닉스와의 공급망 시너지를 고려할 때, 굳이 지금 헐값에 팔 이유가 없다는 '보유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결국 외부 업황의 급격한 호전이 매각 측인 SK에게 판도를 뒤집을 명분을 만들어준 셈이다.
이처럼 외부 변수로 메가 딜이 흔들리는 사례는 또 있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추진해 온 배달의민족 매각 작업 역시 안갯 속에 빠진 상태다. 주관사인 JP모건을 통해 지난달 예비입찰을 마치고 숏리스트 실사를 진행 중이던 배민 매각 전은 오는 7월 21일 본입찰을 앞두고 있었다. DH가 원하는 몸값은 8조 원에 달했다. 하지만 글로벌 모빌리티 공룡인 '우버(Uber)'의 돌발 행동이 판을 뒤엎었다. 당초 우버는 네이버 등과 함께 배민을 인수할 유력한 잠재 후보로 거론됐다.
우버는 8조 원을 들여 한국 법인인 배민만 사는 대신, DH 본사의 지분을 사들이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지난달 중순 DH 지분 19.5%를 전격 확보한 우버는 최근 지분율을 36.83%까지 끌어올리며 단독 최대주주에 등극했다. 우버가 DH의 경영권을 사실상 확보하면서 배민 매각의 명분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펀더멘털 확실해도 '외풍' 우려…메가딜 멈추는 악재들
업게에서는 SK실트론과 배민 등의 딜을 멈추고 있는 외부 악재가 비단 특정 업황이나 글로벌 빅테크의 움직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장기화되고 있는 이란발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이에 따른 고유가 기조, 좀처럼 꺾이지 않는 추가 금리 인상 우려는 대형 M&A의 가장 치명적인 외부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조 단위 빅딜은 인수금융(LBO)을 통한 자금 조달 비중이 절대적인데,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거나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지면 인수 측이 짊어져야 할 이자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는 결국 딜의 경제성(수익성)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여기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환율 변동성까지 더해지면서 크로스보더 딜이나 외화 자금이 얽힌 대형 거래들은 실사 단계에서부터 극도로 보수적인 기조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같은 전방위적 거시경제 불확실성 탓에 계약 막판에 무산되거나 잠정 중단되는 '딜 드롭(Deal Drop)' 현상이 앞으로 더 빈번해질 것이란 우려가 깊다. 매각 측은 자산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길 원하는 반면, 원매자들은 지정학적 위기와 환율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대규모 '안전 마진'을 요구하며 가격 갭을 좁히지 못하는 건 아니냐는 것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업의 펀더멘털과 시너지만 확실하면 딜을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쟁, 금리, 환율 중 하나만 삐끗해도 자금줄이 막히거나 인수 후 실적이 고꾸라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시장의 변동성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커지면서 외풍을 견디지 못하는 메가 딜들이 속속 좌초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