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탈원전'에서 'SMR'로

경제

뉴스1,

2026년 6월 12일, 오전 10:00

김화진 미시간대 로스쿨 석좌교수

80년 전인 1947년 5월 25일 서울 중구 초동 106번지에서 '현대토건사'로 출범했던 현대건설(Hyundai E&C)이 이제 새 역사를 쓴다. 현대건설은 2025년 3월 여의도 페어몬트호텔에서 CEO인베스터데이를 개최하고 미래 성장전략 'H-Road'를 공개했다. 에너지 중심 성장전략이다. 원자력 시장을 선도하고 수소·신재생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한다. 현대건설은 이미 미국 미시간주 팰리세이즈 원전 부지에 홀텍(Holtec International)과 공동으로 SMR-300 1호기 착공을 앞두고 있다. SMR(Small Modular Reactor)은 기존 대비 작은 용량과 모듈식 설계를 선택한 원자로다. '소형모듈원전'으로 불린다.

'인공지능(AI) 혁명'으로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로 데이터센터가 건설되고 있다.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의 공급이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으로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지만, 탄소배출 감축 압력에서 예외는 아니다. 원자력발전이 해답이다. 그런데 기존 원자력발전소는 스리마일(1979), 체르노빌(1986), 후쿠시마(2011) 등에서 일어난 사고가 보여준 위험성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설비가 해체돼 왔다. SMR이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다.

현재 약 70개 업체가 개발 중인 SMR은 원래 사막이나 극지 등의 전력 공급을 위해 나왔다. 현대건설은 2022년에 홀텍과 SMR 글로벌 독점계약을 체결한 후 공동으로 원전 해체 사업에도 진출했다. 1962년 건설됐던 인디안포인트(IPEC) 1~3호 원전 해체 부지에 SMR 파일럿 단지를 건설한다. 미국은 원전 해체의 글로벌 최대 시장이고 홀텍은 원전 해체와 핵연료·방사성 폐기물 저장·관리 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호기의 모습. (한국전력 제공) © 뉴스1

홀텍이 개발하는 경수로형 범용 모델은 3.5세대라고 부르는 모델이다. 4세대 모델보다 상업화가 몇 년 더 빠를 것으로 본다. SMR 경쟁의 본질은 기술적 우수성이지만 실제 사업화 과정에서는 인허가, 공급망, 시공 역량과 같은 요소들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건설 원전 사업의 핵심 경쟁력은 1971년 고리 1호기 이후 55년간 쉼 없이 이어진 시공의 연속성에도 있다. 글로벌 원전 산업에서 반세기 넘게 건설 경험이 단절되지 않고 축적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원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원전까지 세대를 이어 현장 경험과 시공 노하우를 쌓아 왔다. 경쟁사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강력한 자산이다.

원전 시공은 수백만 장의 설계도면을 실제 구조물로 구현해 내는 작업이다. 밀리미터 단위의 정밀도와 철저한 품질관리가 요구되는 고난도 엔지니어링이다. 경쟁력이 설계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장기간 축적된 현장 경험, 품질 관리 체계, 숙련 인력 그리고 공급망이 함께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과거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국내 원전 생태계의 연속성을 훼손할 뻔했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이다. 다행히 연속성은 유지됐고 현대건설은 SMR 시대에도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과 공급망을 손에 쥐고 출발한다.

SMR은 대형 원전과 달리 공장에서 생산한 모듈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어서 설계 역량 못지않게 안정적인 기자재 공급과 시공 체계가 중요하다. 아무리 우수한 노형이라도 이를 반복적으로 구현할 공급망과 시공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대한 경제성을 실현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반세기의 시공 경험과 국내 원전 공급망을 모두 갖춘 현대건설은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경북 경주시 감포읍 일원에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등을 담당할 문무대왕과학연구소를 짓고 있다. 문무대왕과학연구소는 우주와 해양, 극지 등 국가 전략 분야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형 원자력 시스템 등을 개발하게 된다. © 뉴스1 최창호 기자

인류가 달이나 화성에 진출해서 정착하게 되는 경우의 전력공급원도 우선은 SMR이 될 것이다. 우주에서의 탐사 활동에는 생명 보조 장치와 통신 수단을 비롯한 갖가지 장비의 작동에 전기가 필요하다. 영국의 롤스로이스는 자동차 크기만 한 SMR을 만들어서 2029년까지 달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 항공우주국은 달에 설치할 SMR을 제작하는 롤스로이스의 연구와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290만 파운드를 투입한다.

이탈리아도 35년 만에 탈원전을 뒤로하고 SMR 건설에 나선다. SMR 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도 준비 중이다. 10년 내로 SMR을 가동하는 것이 목표다. 이탈리아는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전 보유국이었지만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원전 4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이듬해인 1987년 국민투표로 탈원전이 결정됐고 1990년에 마지막 원자로를 폐쇄했다. 원전 재도입이 2010년대 베를루스코니 총리 시절 다시 추진됐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로 국민투표에서 반대 의견이 90%를 넘겨 무산됐다.

정부는 2026년 1월에 신규 원전 2기와 SMR 1기 건설을 확정했다. AI 산업과 녹색 전환을 위해서다. 건설 부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1967년 무렵 부산광역시의 고리1호기 건설에 웨스팅하우스의 하도급으로 시작해서 1996년 전남 영광군의 한빛3·4호기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원전 건설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한빛3·4호기는 국내 원자력발전 사상 처음으로 3년간 무사고, 무고장 운전을 달성한 프로젝트다.

opinion@news1.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