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中심] 위장 사모 걷어내는 中…23조위안 민간자본, 전략산업으로

경제

이데일리,

2026년 6월 13일, 오후 04:04

세계 최대 생산기지이자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인 중화권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자본시장의 시선이 향하고 있습니다. ‘자본中심’ 은 중국과 중화권 자본시장 소식을 전하는 시리즈입니다. 상하이·선전의 본토 시장부터 홍콩의 달러 유동성 창구, 대만의 반도체 밸류체인까지 중화권을 관통하는 자금의 흐름을 짚고,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중화권 시장의 현재 온도와 방향을 담습니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중국이 23조위안대 사모펀드 시장 정비에 나섰다. 불법 사모펀드와 위장 운용사를 걷어내 금융 리스크를 낮추겠다는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장기자금을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첨단제조 등 전략산업으로 유도하려는 의도다.

(사진=로이터)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국무원 중앙판공청은 이달 '사모투자펀드 감독 강화·위험 방지·고품질 발전 촉진에 관한 지도의견'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사모펀드 등록, 운용, 위험 모니터링, 정부투자펀드 관리, 국유기업 투자펀드 정비, 부실 운용사 퇴출까지 포괄하는 사모펀드 시장 전반의 정비 방안이다.

중국 사모펀드 시장은 규모만 놓고 보면 이미 대형 자본시장이다. 중국증권투자기금업협회(AMAC)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중국 내 사모펀드는 14만 2078개, 운용 규모는 23조 4600억위안(5276조 62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사모지분투자펀드는 11조 3800억위안(약 2559조원), 창업투자펀드(VC)는 3조9600억위안(약 891조원) 규모로, 기업 지분투자와 벤처투자 자금만 15조3400억위안(약 3450조원)에 이른다. 중국 당국 입장에서는 이 자금의 방향이 단순 금융투자를 넘어 산업정책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번 조치의 1차 대상은 부실 운용사다. 지도의견은 먼저 사모펀드 등록 전 심사를 강화하고, 당국 동의 없이 기업명이나 사업 범위에 '사모펀드', '창업투자펀드'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을 제한하기로 했다. 사모펀드 특성에 맞지 않는 기관이나 상품이 사모펀드로 등록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또한 중대한 위법 사항이 있거나 장기간 연락이 끊기고, 실질 영업을 하지 않는 운용사의 경우에는 등록 말소의 대상이 된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명목상 지분'이나 '실질상 채권'에 대한 규제다. 겉으로는 기업 지분에 투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금 회수와 일정 수익을 미리 약속받는 고정수익을 약정한 우회 대출 거래를 막는 것이다. 사모펀드가 관계사 지원이나 부실 사업 정리에 동원되는 것을 막고, 실제 기업 투자 기능을 회복하겠다는 취지다.

운용사 정리는 이미 하위 규모부터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올해 4월 한 달 동안 새로 등록된 사모펀드 운용사는 11곳에 그친 반면 등록 말소 운용사는 286곳에 달했다. 당국에 따르면 중국 전체 운용사 가운데 1억위안(224억원) 이상을 운용하는 운용사는 1만185곳으로 54.2% 수준이지만, 이들이 관리하는 규모가 전체의 98.8%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실질 운용이 없거나 정상 영업을 하지 않는 휴면, 위장 운용사를 우선 정리하겠다는 것이 이번 정비의 목적이다.

이 같이 당국이 대형 시장의 정비에 나선 배경에는 잇따른 중국판 라임·옵티머스 사건들이 있다. 가장 최근 발생한 사례는 지난 2024년 '유처투자'의 환매 중단 사태가 있다. 유처투자는 사모펀드 투자자들에게는 은행예금에 자금이 예치되는 상품이라고 설명했으나, 실제로는 일부 자금이 수탁계좌 밖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회수되지 않은 금액은 2100억원에 달했다. 앞서 상하이 '푸싱실업'도 채권형 상품을 판매한다고 홍보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약 12조7000억원을 모았지만, 실제 상품은 존재하지 않았고 투자자 미회수 자금은 4조90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중국 당국은 이런 부실 운용을 걸러내는 한편 사모펀드의 투자 방향도 다시 설정하고 있다. 앞서 발표한 지도의견에서는 사모지분펀드와 창업투자펀드를 통해 '인내자본'을 육성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인내자본은 초기기업, 하드테크, 반도체, AI처럼 회수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국가전략상 필요한 분야에 장기간 투입되는 자금이다. 단기 수익이나 우회 금융에 치우친 사모자금을 기술기업의 성장자본으로 돌리겠다는 취지다.

이와 동시에 신흥산업의 인수합병(M&A)을 뒷받침하는 펀드도 정책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중국 당국이 염두에 둔 것은 단순한 기업 매매가 아니라 기술과 공급망의 재배치다. 반도체, AI 인프라, 첨단제조처럼 개별 기업만으로는 규모를 키우기 어려운 분야에 사모펀드가 자금을 대고, 유사 기업을 묶거나 핵심 기술을 가진 기업을 흡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사모펀드 시장은 이번 정비를 계기로 운용의 적격성과 투자 방향을 더 강하게 요구받게 됐다. 부실 운용사와 위장 사모펀드는 퇴출 압박을 받는 반면, AI·반도체·첨단제조 등 국가전략에 맞는 하드테크 펀드에는 자금이 더 몰릴 수 있게 된 것이다. 23조위안대 사모펀드 시장이 느슨한 양적 성장에서 선별적 기술투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