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시행 100일(17일)을 앞두고 경영계는 원청 사용자성 인정 범위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대되면서 기업의 교섭 부담과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가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면서 원청 책임을 묻는 구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실제 법 시행 이후 1000곳이 넘는 하청노조가 원청 430여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고, 지방노동위원회가 판단한 사건 80건 중에서도 90%에 가까운 비율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됐다. 아직 다수 사건이 진행 중인 데다 원청 상대 교섭 요구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사용자성 인정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는 단계지만, 하반기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이 본격화하면서 노사 갈등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시행 초기 우려됐던 노사 대혼란은 아직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본격적인 교섭 국면에 앞선 '폭풍전야'에 가까운 단계라고 진단한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 사례가 축적될수록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가 확산될 가능성이 큰 만큼 올 하반기가 노란봉투법의 실질적 파급력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 "노사 대혼란 없었다…7월 이후 중노위 재심 나오는 하반기가 분수령"
김종진 노동사회연구소장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부터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판단, 실제 교섭 진행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지나야 의미 있는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10일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이달 5일까지 하청노조 1137곳(조합원 16만1830명)이 원청 431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이 가운데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을 요구하며 지방노동위원회에 접수된 사건은 80건이며, 지노위는 이 중 69건(86.3%)에 대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교섭에 나설 것을 결정했다.
다만 김 소장은 "아직 판단 사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의 효과를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법 시행 전 경제계 일각에서 제기했던 '노사관계 대혼란' 우려는 현실화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파업 급증이나 기업 경영 차질 등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과거 비정규직법 시행 당시 제기됐던 대규모 해고 우려가 현실화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향후 업종과 사업장별 사례가 충분히 축적돼야 제도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섭 기간 단축 여부와 노동손실일수 변화 등 구체적인 지표를 통해 성과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 역시 "아직 법의 실질적 영향이 산업현장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단계는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현재는 원청 사용자성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이어지는 이른바 '샅바싸움' 국면으로, 실제 영향은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 교수는 원청 기업들이 아직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서기보다는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원청 입장에서는 직접 고용한 노동자가 아닌 하청 노동자와 교섭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크다"며 "한 번 교섭 관계가 형성되면 향후 지속적인 의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배경으로는 사용자성 판단 기준의 불확실성도 꼽았다. 일부 사건에서는 사용자성 여부를 명확히 결론 내리지 않은 채 교섭을 권고하거나, 일부 교섭 의제만 인정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법적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하청노조 역시 아직 본격적인 교섭 국면에 진입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일부 원청이 교섭에 응하고는 있지만 교섭 의제와 범위를 둘러싼 이견이 큰 데다, 다른 기업들의 대응 사례를 지켜보려는 분위기가 강해 실제 협상 진전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는 사용자성을 인정받기 위한 단계일 뿐 교섭이나 파업이 본격화된 상황은 아니다"라며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6~7월이 사실상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며 "교섭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이나 파업 등 쟁의행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7월 이후 하계 임단협 시기와 맞물리면 하청노조의 원청 상대 교섭과 쟁의행위가 본격화될 수 있다"며 "그 시점부터가 노란봉투법의 실제 효과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노동조합법 개악 규탄 및 거부권 행사 건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경제6단체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산업생태계 붕괴 및 노사분규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할 것을 호소했다. 2023.11.13 © 뉴스1 장수영 기자
경영계 "사용자성 확대 우려 현실화…경영 불확실성 커져"
경영계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 사용자성 인정 사례가 늘어나면서 기업 부담과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은 "노동위원회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교섭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원청 사용자성 확대가 임금·근로조건뿐 아니라 경영 판단 영역까지 교섭 대상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원·하청 구조가 복잡한 국내 산업 특성상 기업들이 어느 범위까지 교섭 의무를 부담해야 하는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 실장은 최근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 역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되면서 노조의 협상력은 높아지고 기업 부담은 커지는 방향으로 제도가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업 이익은 연구개발 투자나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도 활용돼야 하는데 경영권 관련 사안까지 교섭 대상으로 확대되면 투자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중소기업계는 아직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현재까지 중소기업 현장에서 관련 애로를 호소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며 "영향은 주로 대기업·중견기업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향후 원청 기업의 부담이 협력업체와의 거래 관계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 3월 9일 서울 거리에서 택배 기사들이 배달을 하고 있다. 원청 기업과 하청 노동자 간 교섭을 가능하게 하고,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행위로 생긴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라 대부분 개인사업자 신분인 택배·플랫폼 노동자들도 원청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뉴스1 최지환 기자
노동계 "원청도 하청과 성과 나눠야 한다는 인식 확산"
노동계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가장 큰 변화로 원청과 하청 간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부위원장)은 "하청 노동자도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고 원청의 이익을 하청 노동자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을 예로 들며 "예전에는 원청 기업의 성과가 원청 노동자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협력업체 노동자와도 성과를 공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노동계는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제도적 한계도 지적했다. 하청 노조가 원청과 교섭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지역별 노동위원회 판단이 엇갈리면서 현장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대변인은 "개정법의 취지는 하청 노동자가 실질적 권한을 가진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시행령과 행정지침이 오히려 절차적 장벽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원청 기업들이 여전히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며 "정부와 공공기관 역시 모범 사용자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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