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울산지역본부가 원청 기업과 지방정부가 직접 교섭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민주노총 제공)/뉴스1
"실무 판단 기준이 명확히 나올 때까지 혼란은 지속될 것입니다."
개정 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 시행 100일(오는 17일)을 앞둔 상황에서 기업들은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손해배상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노조는 '파업 카드'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또한밀려드는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사용자성 판단을 먼저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직 직접 협상에 나선 사례는 거의 없다.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기업들은 빗발치는 노조의 교섭 요구에 시달리고 동시에 비슷한 사안을 두고 다른 판단이 나오는 것을 보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별다른 대책도 찾지 못한 채 유사한 업종에서 벌어지는 상황만을 예의주시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실제로타워크레인 노동조합이 총파업 돌입으로 전국 공사 현장을 멈춰 세우겠다고 경고하자 깜짝 놀란 사용자단체가 급히 수습에 나섰다.
레미콘 노조는 제조사를 향한 단체 교섭을 요구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전면 운행 중단에 돌입하겠다고도 했다.경제계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 등 국가 핵심 반도체 건설 현장에 대한 레미콘 공급 차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레미콘운송조합, 실력 행사…공사장 '올스톱' 위기
14일 이종배 의원실(국민의힘)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노란봉투법 시행 3개월여간 하청 노동조합으로부터 교섭을 요구받은 원청 사업장은 431곳이다. 교섭을 요구한 하청 노조는 1137곳으로 조합원은 16만 1830명 수준이다.
전국레미콘운송조합은 지난 8일 수도권 전역에서 운송을 중단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건설 현장에선 노조가 토요일 4회 운반 조건으로 하루 150만 원 규모 비용 인상을 요구했다.
레미콘 운송 종사자들은 대부분 개인 소유의 믹서트럭을 운행하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다. 레미콘 업체들은 이들이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법원이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했다는 입장이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하청 노조의 원청에 대한 교섭 요구가 확대되고 있어 이들이 레미콘 제조사를 넘어 원청에 직접 단가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대제철은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가 하청 노조들의 교섭단위를 따로 해 원청과 각각 교섭할 수 있도록 한 판정에 불복해 최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앞서 현대ITC 노조가 제기한 건에서 지노위는 원청 사용자성·분리교섭을 모두 인정했다. 이 결과가 확정되면 현대제철은 원청 노조를 포함해 최대 3개 노조와 일일이 별도의 교섭 테이블을 차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사업장 곳곳서 원청·하청 노조 갈등 속출…파업 경고도 '빈번'
포스코 역시 금속노조·플랜트건설노조가 제기한 교섭단위 분리 요구를 지노위가 전부 인정하자 사측이 즉각 불복해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했다.
유통 부문에선 화물연대 소속 배송기사들이 원청인 BGF리테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파업과 진주물류센터 봉쇄에 나서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중재로 사측과 운송료 인상 등에 합의해 파업 자체는 일단락됐지만 파업 기간 피해는 고스란히 CU 가맹점주들에게 돌아갔다.
산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노란봉투법 시작 단계"라며 "민간과 공공부문을 가리지 않고 각계에서 교섭 요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원·하청 교섭 의무를 두고 당사자 간 의견이 달라 (이견이 있으면) 노동위로 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사 간 합의를 하는 방법 외에는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 지노위, 중노위 판단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까지 갈등 상황에서 모범적이거나 합당한 사례, 기준 등이 정해지지 않아 앞으로 더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현장의 갈등은 결국 행정 관청과 노동위원회로 향하고 있다. 축적된 법원 판례나 구체적인 실무 선례가 충분하지 않다 보니, 노사가 교섭에 우선 나서기보다 노동위원회의 판단 절차를 통해 합법적인 사용자성 여부 등을 확인받아 교섭을 진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원청 기업이 하청 노조와 교섭을 해야 하는지를 두고 지노위가 판단한 사안은 80건이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 교섭하라고 결론 내린 사건은 69건에 이른다. 이 중 지난 9일까지 지방노동위는 16건에 대해 노사에 판정문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란봉투법 시행 후 교섭 요구 추이(단위 곳, 명).(고용노동부, 이종배 의원실 자료)/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노란봉투법 핵심은 사용자 범위 확대, 노동쟁의 대상 범위 확대, 단결권 보장 강화, 손해배상 책임 범위 설정 등이다.
사용자 범위가 확대되면서 근로계약 직접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원청'까지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게 됐다. 또 임금과 근로시간, 조건 외에도 정리해고, 구조조정, 공장 이전 등 '사업 경영상의 결정' 역시 노동쟁의의 대상이 됐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공공과 민간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각종 교섭 요구가 확산하고 있다"며 "(많은 기업이) 유사 업종, 경쟁 기업에서 관련 사안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준 모호해 판정 오락가락…"다툼 지속될 수밖에"
특히 오락가락한 사용자성 판단 결과는 기업의 혼란을 더 부추기고 있다.초심에서 부정된 사안이 재심에서 인정되거나, 반대로 초심에서 인정됐던 사안이 재심에서 부정되기도 했다.
파장을 부른 건 중흥건설과 중흥토건·건설 사례다. 지난 4일 중노위는 한국노총 소속 타워크레인조종사노동조합이 사측을 상대로 낸 '교섭 요구 사실 공고 시정 신청' 재심에서 전남지노위의 결정을 취소하고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전남지노위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원청의 사용자성을 기각했지만 중노위는 이를 뒤집고 원청인 중흥건설이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 사실을 사업장에 공고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현행 개정 노조법 해석 지침은 구 노조법하에서 실질적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한 1·2심 판결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법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흥토건·건설 사례와 달리 한화오션 사내하청 교섭 분쟁에선 노동당국이 명확한 판단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오션은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공고하면서, 사내 급식 및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외주업체인 웰리브지회 조합원 450명을 배제했다.
지노위는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조합원을 자의적으로 빼는 절차는 잘못됐다며 이를 시정하라고 했지만 핵심 쟁점인 한화오션의 사용자성 인정 여부에 대해선 판단을 유보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지노위 결정문을 보면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나머지 노조 요구안은 판단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며 "노동부의 원·하청 교섭 매뉴얼은 나머지 의제에 대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교섭하라고 안내하지만, 이는 결국 갈등의 불씨를 계속 남겨두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선 주요 기업이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겪는 혼란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단기간에 혼란이 정리되거나 제도가 안정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개정 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2·3조(노란봉투법) 특징.(고용노동부 자료)/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학계에선 현재 나타나고 있는 모호한 기준과 불명확한 지침이 초래할 수 있는 국가 경제적 손실을 경고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결교섭 요구가 쏟아질 것이고, 결렬 시 파업으로, 거부 시 노동위원회나 형사 고발로 이어질 것은 기정사실"이라면서 "일각에서는 괜찮다고 하지만 산업 생태계와 노사관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을 상대로 하청 노조가 직접 권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괴리를 꼬집었다.그는 "원래 단체교섭 대상이 아닌 성과급 등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라면서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하는 구조가 아님에도 교섭을 요구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ji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