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안 바뀌는 거 안다, 하지만..." 계산대에 스티커빵 올린 속사정[사(Buy)는 게 뭔지]

경제

이데일리,

2026년 6월 14일, 오전 11:19

[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사(Buy)는 게 뭔지:사는(Live) 게 팍팍할 때면, 우리는 무언가를 삽니다(Buy). 경제지 기자가 영수증 뒤에 숨겨진 우리의 마음을 읽어드립니다. 도대체 남들은 뭘 사고, 왜 열광할까요? 물건의 스펙보다는 ‘그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장바구니를 보면 시대가 보이고, 결제 내역을 보면 내 마음이 보이니까요. 소비로 세상을 읽는 시간, <사(buy)는 게 뭔지> 입니다.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개막을 하루 앞둔 30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피카츄 등 조형물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뉴스1)
어른의 하루는 대체로 귀엽지 않다. 출근길 지하철은 붐비고, 메신저 알림은 쌓이고,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간다. 회의는 길고, 점심값은 비싸고, 퇴근길 어깨는 무겁다. 귀여운 일이라곤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요즘 어른들은 퇴근길 편의점에서 캐릭터가 그려진 빵 하나를 집어 든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다 마음이 잠시 말랑해지고 싶어서다. 빵 봉지 위에 그려진 얼굴 하나, 안에 들어 있는 스티커 한 장, 계산대 앞에서 느끼는 작고 유치한 설렘. 그것으로 하루의 모서리가 조금은 둥글어진다.

캐릭터 먹거리는 더 이상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산리오, 짱구, 치이카와, 포켓몬, 티니핑 등 익숙한 캐릭터는 빵과 과자, 음료, 아이스크림, 젤리, 도시락 위로 옮겨 붙었다. 과거 캐릭터 상품이 아이를 겨냥한 ‘덤’에 가까웠다면, 최근에는 2030 성인 소비자를 움직이는 주요 구매 이유가 됐다.

소비자는 맛만 보고 사지 않는다. 귀여운 포장지를 보고, 안에 들어 있는 굿즈를 기대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할 장면까지 떠올린다. 캐릭터 먹거리는 이제 배를 채우는 상품이 아니라 기분을 바꾸는 상품이다. 오늘의 나는 피곤하지만, 봉지 속 캐릭터만큼은 해맑다. 어른은 그 해맑음에 돈을 낸다.

실제 유통업계에서도 캐릭터 협업 상품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편의점과 식품업체들은 인기 캐릭터를 앞세운 협업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CU의 캐릭터 협업 상품 매출은 2022년 전년 대비 12.5배 증가했고, 2023년에도 4.2배 늘었다. 구매자 중 10~30대 비중은 77.5%에 달했다. 캐릭터 상품 소비가 어린이보다 젊은 성인층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 현상을 단순히 ‘키덜트 소비’라고 부르기엔 조금 부족하다. 키덜트가 어린 시절 취향을 다시 꺼내는 소비라면, 요즘 캐릭터 먹거리 소비는 현재의 피로를 잠시 덜어내는 소비에 가깝다. 어른들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만 캐릭터빵을 사는 게 아니다. 어른의 하루에서 잠시 빠져나오고 싶어서 귀여운 것을 산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참는 일이다. 하기 싫은 말도 하고, 듣기 싫은 말도 듣고, 사고 싶은 것은 장바구니에 담아둔 채 월급날을 기다린다. 그러다 편의점 매대에서 캐릭터가 그려진 3000원짜리 빵을 발견한다. 큰 결심은 필요 없다. 대단한 합리화도 필요 없다. 귀여우니까 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캐릭터 먹거리가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격은 비교적 낮고, 만족은 즉각적이다. 명품 가방은 어렵고 해외여행은 부담스럽지만, 캐릭터빵 하나쯤은 오늘 살 수 있다. 소비자는 그 작은 지출로 맛과 수집, 인증, 위로를 한 번에 얻는다. 스티커 한 장은 종잇조각에 불과하지만, 계산 직후의 기분은 꽤 선명하다.

식품업계 입장에서도 캐릭터 협업은 매력적인 카드다. 신제품의 맛과 품질만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붙잡기 어려운 시대다. 매대는 빽빽하고, 브랜드는 넘쳐나고, 소비자의 시선은 짧다. 이때 캐릭터는 설명을 줄인다. 낯선 제품도 익숙한 얼굴을 달면 손이 간다. 캐릭터는 제품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구매 이유를 감정으로 바꾼다.

물론 한계도 있다. 캐릭터에만 기대면 상품 자체의 매력은 흐려질 수 있다. 협업이 반복될수록 소비자는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캐릭터는 강력한 미끼지만, 제품력 없는 협업은 오래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도 사람들은 또 산다. 알고도 산다. 빵보다 스티커가 목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산대에 올린다. 합리적 소비라고 부르기엔 조금 민망하고, 충동구매라고만 하기엔 마음이 너무 작고 귀엽다. 어쩌면 캐릭터 먹거리는 요즘 어른들이 허락한 가장 무해한 낭비일지 모른다.

세상은 자꾸 어른스러움을 요구한다. 침착하게 일하고, 능숙하게 대답하고, 감정을 관리하고, 지출을 통제하라고 한다. 그런 하루 끝에 캐릭터빵 하나를 사는 일은 잠깐의 반항이다. “나도 안다. 이 빵이 내 인생을 바꿔주진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귀여운 게 필요하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퇴근길 편의점에서 캐릭터빵을 집어 들 것이다. 봉지를 뜯고, 빵보다 먼저 스티커를 확인할 것이다.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면 괜히 웃고, 중복이 나오면 조금 실망할 것이다. 우습지만 진지한 순간이다. 어른의 삶은 별로 귀엽지 않으니까. 우리는 가끔 돈을 주고라도 귀여움을 사야 한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