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기 고정금리 외치던 금융당국…차주도 은행도 외면

경제

이데일리,

2026년 6월 14일, 오후 07:12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금융당국이 추진해온 초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활성화 정책이 시장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금리 상승기에 차주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30년 만기 고정금리 주담대 도입을 추진했지만 정작 차주들은 변동금리로 이동하고 은행들은 장기 자금 조달을 포기하는 모습이다. 정책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시장 참여자들의 움직임은 당국이 의도한 방향과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일부터 주택신용보증기금 출연요율 부과 기준 재편에 따라 주택대출 금리가 오를 전망이다.(사진=연합뉴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장기 고정금리 활성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초장기 고정금리 주담대 도입 방안을 검토해 왔다. TF에서는 최장 30년 동안 금리가 변하지 않는 순수 고정금리 주담대 출시와 장기 고정금리 대출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장기 고정금리 확대를 추진하는 이유는 금리 변동 위험을 차주가 아닌 금융기관과 시장이 분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20~30년 고정금리 주담대가 일반적이지만 국내는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금리 상승기에 가계의 충격이 직접적으로 확대되는 구조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최근 시장 상황은 당국의 구상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고정형 주담대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차주들이 다시 변동금리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지난 4월 신규 취급 주담대 가운데 고정금리 비중은 47.8%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86.6%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반년 만에 사실상 반토막 난 셈이다. 반면 변동금리 비중은 52.2%로 고정금리를 다시 추월했다.

실제 은행권에서는 변동금리 상품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이달 대출모집인 채널에 배정한 주담대 한도가 모두 소진됐고, 우리은행도 6개월 변동형 주담대 우대금리 물량이 조기 소진됐다. 하나은행 역시 일부 모집법인에서 변동형 주담대 한도가 바닥난 것으로 알려졌다.

배경에는 금리 차이가 있다. 최근 5대 은행의 변동형 주담대 금리는 연 3% 후반~4%대 수준인 반면 5년 주기형·혼합형 고정금리 상품은 5~7%대까지 올라섰다. 금리 인상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당장 이자 부담이 낮은 변동금리를 선택하는 차주가 늘어나는 것이다.

공급 측면에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장기 고정금리 주담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커버드본드 등 장기 자금 조달 수단이 필요하지만 은행권은 올해 원화 커버드본드 발행 계획을 사실상 접은 상태다. KB국민·우리·NH농협은행과 일부 지방은행은 지난해부터 발행을 검토해 왔지만 장기 시장금리 상승과 고정금리 대출 수요 감소로 필요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AAA등급 5년 만기 커버드본드 금리는 지난해 말 3%대 중반에서 최근 4%대 중반까지 상승했다. 여기에 최근 주택금융공사 MBS 장기물 입찰에서 미매각이 발생하는 등 투자자들의 장기채 선호도도 약화되는 모습이다. 조달 비용은 높아지고 투자 수요는 줄어들면서 은행들이 장기 고정금리 대출 확대에 적극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금융당국은 장기 고정금리 활성화 정책 자체를 접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관련 대책은 상당 부분 준비를 마친 상태로, 현재는 발표 시점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장기 고정금리 확대가 가계부채 구조 개선에 필요하다고 보고 있지만 최근 가계대출 관리 강화와 부동산 시장 과열 우려가 커지면서 단독 발표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서는 장기 고정금리 확대 필요성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는 상황에서도 차주는 변동금리로 이동하고 은행은 장기 조달을 줄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수년째 추진해온 고정금리 확대 정책이 정작 시장에서는 힘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장기 고정금리 확대는 결국 가계부채의 체질을 바꾸는 문제”라며 “정책 필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지만 은행은 수익성 문제, 차주는 금리 부담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기 고정금리 활성화가 실제 작동하려면 은행의 조달 부담을 낮춰줄 제도적 지원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금리 인센티브가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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