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리스크 상수화 시대…한국, 구조개혁 서둘러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6월 16일, 오전 06:31

[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지정학적 리스크가 경제 시스템 내부로 완전히 편입되면서, 작은 충격도 크게 증폭되는 고차방정식 국면에 진입했다. 이제는 단일 정책 처방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합 위기 상황이다.”

박신영 동남아중앙은행기구(SEACEN) 센터 소장은 이데일리 전략포럼(ESF)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현재의 위기를 “불확실성의 구조화”라고 규정하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인해 글로벌 경제는 유례없는 ‘복합 위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란발 에너지 위기와 미·중 패권 경쟁, 그리고 공급망 재편이 맞물리며 세계 경제의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블록 경제화, GDP 7% 감소시켜

박 소장은 현재 글로벌 경제를 압박하는 핵심 리스크로 세 가지를 꼽았다. △중동 긴장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미·중 갈등의 전면적 확산 △공급망 재편에 따른 구조적 비용 상승이다.

박 소장은 “현재의 위기는 여러 원인이 동시에 겹쳐 상호 증폭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면서 “이란 전쟁을 둘러싼 군사 긴장이 유가에 상방 압력을 가하며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미·중 갈등이 무역을 넘어 기술과 금융 패권 전쟁으로 확대되면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특히 “공급망이 효율성 대신 안정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재편되면서 기업 비용이 구조적으로 상승, 글로벌 경제가 ‘고비용·저성장 체제’로 고착화될 위험이 크다”고 진단했다.

최근 국제 질서가 ‘블록 경제화’로 흐르면서 지경학적 분열이 통화·금융 환경의 근간을 바꾸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효율적 분업 대신 ‘리쇼어링’ 이나 ‘프렌드 쇼어링’ 등 국가안보, 외교, 혹은 전략적 목적 위주의 정책이 확산되면서 생산과 무역 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IMF는 이러한 분열이 글로벌 GDP를 최대 7%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 확산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상시화됐다”며 “이는 중앙은행이 과거처럼 저금리 기조로 복귀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달러 시스템을 제재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각국이 자산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며 “실제로 작년 기준 전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금 비중이 미국 국채를 넘어섰다. 이는 장기적으로 달러 패권의 균열과 금융 시장의 분절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재정 우위(Fiscal Dominance)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공급망 재편, 첨단기술육성, 안보와 보조금 경쟁으로 각국 정부의 재정지출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작년 글로벌 공공부채가 GDP의 93%에 이르면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정부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반면, 지정학적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통화 정책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중앙은행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독립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韓경제체력 약화…체질 개선 서둘러야

박 소장은 중앙은행이 주목해야 할 위기 전이 경로로 기대 인플레이션과 신용 리스크, 달러 유동성을 제시했다. 유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아시아 신흥국의 외환 리스크에 대해서는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박 소장은 “현재 외환보유고와 정책 역량이 과거보다 크게 개선돼 1997년이나 2008년 같은 전형적인 통화 붕괴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위기는 금융이 아닌 지정학에서 출발한 ‘비정형 충격’이라는 점이 더 위협적이다. 급격한 고갈이 아니더라도 외화 부채에 취약한 기업이나 비은행 금융기관을 통해 달러 유동성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를 내놓았다. 단기적인 시스템 리스크 관리는 훌륭하지만 경제 체질 개선이라는 근본적 과제는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한국은 환율과 자본 유출을 안정적으로 잘 관리해왔다. 그러나 단기 안정에 치우쳐 구조 개혁을 미룬 결과 경제 체력이 약화됐다”면서 “반도체 등 특정 산업과 미·중 특정 국가에 편중된 수출 구조, 경직된 노동시장, 높은 가계부채는 정책 대응의 딜레마를 키우고 있다. 이제는 단기 안정을 넘어 산업 구조의 다변화와 생산성 전환을 위한 구조 조정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향후 정책 방향의 핵심 키워드로 ‘균형’을 제시했다. 물가 안정, 경기 성장, 금융 안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에선 정책의 여유공간은 많이 없는 반면 서로 충돌하는 목표들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목표를 극대화하기보다 균형을 잡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박 소장은 “앞으로 1~3년은 어느 하나의 목표를 극대화하기보다 균형을 잡는 것이 핵심이다”면서 “환율은 특정 수준을 고집하기보다 급격한 변동성을 억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부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잠재성장률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 통화정책만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불가능해 금융이 산업 구조 변화를 통한 생산성 전환을 얼마나 뒷받침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졌다“면서 ”가계부채, 산업, 내수 구조 조정의 끈을 놓지 않고 첨단 산업, 고부가 서비스업 등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통화 금융 정책이 대전환기에 금융안정을 확보하고 투자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 소장은 오는 6월 16·17일 열리는 ’제17회 이데일리 전략포럼‘에서 ’무질서의 시대, 성장 가능한 통화 금융 정책‘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박 소장은...

△서울대 국제경제학 학사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아시안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 지역경제통합국 수석이코노미스트 △OECD 이코노미스트 △동남아시아 중앙은행기구(SEACEN) 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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