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최근 서울시 마포구 서강대 인근 식당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스테이블코인 관련 디지털자산기본법(2단계 입법) 입법 지연에 대해 “답답한 면이 있다”며 “입법을 빨리 서둘러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박 전 장관은 현재 재정경제부 전략경제자문단 위원장, 한국여성의정 상임대표, 서강멘토링센터장 등을 맡고 있다.
앞서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스테이블코인 관련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올해 1분기 중에 입법할 것이라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지난 1월 보고했다. 하지만 지난 2월28일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발발했고 법안 쟁점, 지방선거 등으로 당정협의를 비롯한 법안 논의가 잇따라 미뤄졌다.
현재 국회에는 민병덕·이강일·박상혁 민주당 의원 및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의 디지털자산 종합법안과 안도걸·김현정 민주당 의원 및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스테이블코인 특화 법안, 지난 3월9일 발의된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의 가상자산기본법 제정안 등 스테이블코인 관련 총 8건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사진=이데일리DB)
아울러 박 전 장관은 지난달 미 클래리티법(CLARITY Act·디지털자산 시장구조법)의 상원 은행위원회 통과에 대해 “디지털화폐 결제의 제도권 편입이자 미래금융 질서의 재편 신호탄”이라며 디지털자산기본법 처리를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미국이 국제 표준을 가져가겠다며 나선 상황”이라며 “우리나라는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늦었다”면서 입법 속도전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박 전 장관은 전통(레거시)금융과 미래 영역의 충돌, 혁신과 안정의 마찰, 소비자 보호와 산업 발전의 갈림길에서 국회가 조정·균형자 역할을 해야 입법에 속도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며 국회가 중심을 잡고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한 뒤 추후에 보완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 2021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미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수석고문,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했던 박 전 장관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AI, 반도체 관련 책을 잇따라 출간했다며 “앞으로 범부처 융합적인 민관 협의체를 빨리 구성해 AI 에이전트 커머스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 전 장관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CSIS, 하버드대 연구 성과를 토대로 AI 3대 강국 등 이른바 ‘기술 패권 3부작’ 책을 잇따라 출간했다. AI, 반도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90년대 MBC 기자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을 1시간 가량 인터뷰를 했다. 반도체 인터뷰였는데 내용의 절반도 못 알아들었다. 굉장히 창피했다. 그때부터 반도체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관심을 갖고 보니 이미 방송국이 반도체 그 자체였다. 카메라, 텔레비전, 통신 등 반도체가 이미 일상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것이 정말 미래 산업이 되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됐다.
이후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인생이 된다. 1990년대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 인터뷰가 계기가 된 이후 삼성의 세계 최초 D램 개발을 취재했다. 1995년 LA 특파원 당시 취재원 명함을 통해 이메일이라는 것을 처음 접했다. 그 뒤로 실리콘밸리 취재를 하게 됐다.
그리고 중기부 장관 시절에 시스템 반도체를 키우자고 했다. 메모리는 장치 산업이라서 대기업이 해야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스타트업을 키워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정부 차원에서 리벨리온·퓨리오사AI·디렉스·파두에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당시 수억원을 지원해준 회사들이 지금은 조단위 회사가 됐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가게 된 것도 AI, 반도체 영향?
△하버드대에서 초청을 받아 연구원으로 가게 됐다. 초청 배경에는 미국, 일본, 대만, 한국의 반도체 공급망 관련한 미국의 미래 계획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AI 반도체를 국가안보전략 산업이자 문명사적 전환으로 보고 있다. 처음에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농사를 짓는데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전기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변혁이 있었다. AI는 호롱불에서 전구가 되는 것, 마차에서 자동차로 변화하는 것처럼 엄청난 변화다.
-AI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나라에 기회가 온 것이다. 과거에 산업화 시대에는 좋은 물건을 빨리 만드는 나라가 경제성장률이 높고 선진국이었다. 지금은 데이터를 어떻게 컨트롤 할지, 반도체를 어떻게 다룰지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국가 전략의 핵심이 돼야 한다. AI 반도체 통제권, 데이터 장악력이 중요하다. 산업화 시대에 석유가 전략자원이었으면 지금은 AI 반도체가 전략 자원이다.
-우리나라가 잘 준비하고 있나.
△‘AI 3대강국’이라는 목표는 잘 정했는데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좀 아직 미비한 게 많다. 데이터 온톨리지(Ontology·AI가 이해하는 지식 구조로 바꾸는 작업)가 안 돼 있다. 이게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소버린 LLM(국가가 자체적으로 개발·운영하는 대규모 언어모델)을 아무리 학습해도 미국을 따라가지 못한다. 물론 모든 데이터를 온톨로지 할 필요는 없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전문성이 요구되는 국방, 의료, 제조, 재난 분야 데이터를 온톨로지 해야 한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사진 맨오른쪽)과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9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김민석 국무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 1분기 스테이블코인 관련 디지털자산 기본법(2단계 입법) 제정안 처리를 보고했다.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첫째,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정부의 한 부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처 간 영역 다툼을 하게 되면 정책 추진에 방해만 될 뿐이다. K-온톨로지 프로젝트로 전 분야에 걸친 융합적인 위원회가 필요하다. 둘째, AI 에이전트 커머스를 준비해야 한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화폐와 직결되는 것이다. 금융위, 한국은행, 재정경제부, 중소벤처기업부가 다 모여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준비 안 돼 있다.
-미국의 문페이처럼 한국도 기업들이 나서야 하나.
△미국은 민간 기업들을 경쟁시켜 시장을 확장하고 거기서 표준을 만드는 체제다. 한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를 먼저 줘야 한다. AI 에이전트 커머스는 기존의 마켓과 완전히 다르다. 기존의 마켓은 인간이 결제를 하는 것이다. AI 에이전트 커머스는 인간이 아닌 AI 에이전트가 결제하는 것이다. 판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화폐가 종이에서 비트(bit), 비트에서 코드로 바뀌는 것이다. 코드가 화폐가 되면 돈이 스스로 실행하는 것이다. 내가 내 AI 에이전트에 결제 권한을 줄지 여부도 프로그램밍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장선에서 보면 스테이블코인,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단순히 투기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AI 시대 결제 수단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모든 게 코드화 되고 스마트 컨트랙트로 움직이는 시장에서 작동하게 된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처리되면 은행, 증권사, 카드사, 블록체인 업계에서 디지털자산 비즈니스와 본격적인 합종연횡이 시작될 전망이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AI 에이전트가 나오기 전에는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었다. 종이에서 비트, 비트에서 코드로 바뀌는 프로토콜의 기본이 되는 게 디지털 화폐이자 스테이블코인이다. 이렇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첫째, 국경 간 거래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둘째, 수수료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 24시간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같은 흐름을 준비하는 게 늦은 상황인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늦은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을 빨리 서둘러야 한다. 미국의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시장구조법안)‘이 미 상원 은행위원회를 통과한 것은 디지털화폐 결제가 기존의 결제 라인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제도권으로 편입되고 있는 신호탄이다. 디지털자산이 미래금융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금융 질서의 재편이다.
-우리나라는 왜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고 보나.
△입법 지연은 국회가 역할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주권 및 통화 질서 논란, 산업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가 조정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 한은의 역할론조차 결정이 안 돼 입법 논의를 보면 답답한 면이 있다.
-스테이블코인 입법 지연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국회가 조정,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 국회의 역할은 균형점을 잡아주는 것이다. 레거시와 미래 영역이 충돌하고 있는데 혁신과 안정의 균형점을 어디다 둘 것이냐, 소비자 편익·보호와 산업 발전의 균형점을 어떻게 둘 것이냐, 글로벌 모델과 한국형 모델의 균형점을 어떻게 볼 것이냐 등을 고려해 입법하는 게 맞다. 법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통과시키고 나서 현실과 현장 상황을 보고 단계적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50%+1주 은행 중심 컨소시엄, 가상자산거래소 지분 규제 등의 핵심 쟁점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국회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은행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 너무 방점 을 찍으면 혁신이 안 된다. 글로벌 모델과의 정합성이 떨어지게 된다. 지분규제 쟁점의 경우에도 너무 과도하게 규제하면 결국 시장이 위축되게 된다. 국회가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완할지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국회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국회는 정부가 디지털자산기본법 정부안을 안 내고 있다는 입장인데.
△정부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입법을 통해 얼마만큼 혁신을 취할지는 국회가 정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나와도 쓰이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 전망도 있다.
△그렇지 않다. 일본은 이미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내놓았다. 한국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내놓아야 한다. 기존의 전통시장에서 온라인으로, AI 에이전트 커머스로 넘어가는 시기다. 준비하지 않으면 낙후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제조업 최강국가다. 사람을 잘 교육시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제는 AI를 잘 교육시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미국은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서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다시 뒤집힌다. AI 생산성을 인간이 어떻게 따라가겠나. AI를 잘 교육시키려면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같은 데이터는 온톨로지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 잘 교육 받은 AI가 사람을 대신해 결제를 하면 이 결제를 준비해야 한다. AI 에이전트 커머스의 기본이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이 미래다.
박영선 전 장관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서강대에서 김상용 서강대 교수의 교양 과목 ‘공감의 시대, 경험이 주는 미래’ 수업의 특강 연사로 참여해 AI 에이전트 커머스 시대에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디지털자산(가상자산)이 중심이 되는 결제 수단이 될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준비를 촉구했다. (사진=최훈길 기자)
-신현송 한은 총재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공존을 언급했다. 가능하다고 보나.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본다. AI 시대에는 다양한 디지털화폐가 같이 공존할 것이다. CDBC는 국가에서 관장하고 스테이블코인은 민간이 관장하게 될 것이다. CBDC는 공공성, 신뢰도, 통화 주권 문제와 관련해 국가의 하나의 축이 돼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민첩성, 혁신성에서 민간 디지털화폐 시장과 같이 공존해야 한다. 금융 안전성 문제를 고려하면 CBDC가 있어야 한다. 다만 CBDC는 국가가 개인 거래를 다 볼 수 있다. 반드시 선한 기능한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민간 디지털화폐인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살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공존할 것이다.
-관련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점은.
△국제 표준 논의에 참여야 한다. 미국은 국제 표준을 가져가겠다며 나선 상황이다. 올해 안에 국제 표준을 만들겠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보고만 있을 것인가. 국제 표준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존재감을 내보여야 한다. 한국에서 만든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존재감이 있어야 표준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재경부 혼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 민간 기업들의 의견도 필요한다. 융합적인 협의체를 빨리 구성해 AI 에이전트 커머스를 준비해야 한다. 앞서 중기부 장관 시절에 부산에서 디지털자산 관련 토큰을 발행하려고 했는데 금융당국 반발을 넘지 못했다. 우리나라 스타트업 등 기업들의 블록체인 기술이 굉장히 뛰어난데, 규제 허들을 넘지 못하게 됐다. 그것이 통과됐다면 우리나라가 새로운 금융의 미래 허브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싱가포르도 규제가 있지만, 예측 가능한 규제다. 예측 가능한 규제를 통해 싱가포르는 새로운 금융 질서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라도 샌드박스 제도화를 하면서 빨리 도입을 하는 게 굉장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