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격적인 종전 합의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 선언으로 중동 시장 정상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란 가전 시장을 장악했던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가 이란 시장에 재진출할 것인지에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이란은 인구 약 9000만 명에 달하는 중동 최대 내수시장 중 하나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현지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으며 프리미엄 가전 시장을 주도했다.
TV 93%·냉장고 85%…한때 'K-가전 왕국'
실제 이란은 한국 가전업계의 대표적인 성공 시장으로 꼽힌다. 16일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 업체의 이란 시장 점유율은 평면TV 93%, 냉장고 85%, 세탁기 78%, 에어컨 78%에 달했다.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도 52%를 기록했다.
당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품질 경쟁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앞세워 이란 가전 시장을 사실상 양분했다. 이란은 인구 규모가 크고 젊은 소비층 비중도 높아 중동 지역에서도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미국 제재 이후 한국 기업들의 직접 사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생산과 수출, 금융 거래가 제한되면서 현지 사업 기반도 매우 축소됐다.
업계에서는 이란이 중동 최대 소비시장 가운데 하나인 만큼 제재가 해소될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다시 한번 의미 있는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현지 업체 장악…"시장 환경, 과거와 180도 달라져"
하지만 재진출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변수는 시장 환경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시장에서 철수한 이후 중국 업체들과 현지 기업들이 빈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특히 이란 정부의 지원을 받는 현지 브랜드 '삼(SAM)'과 '지플러스(G-Plus)'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생산·유통 인프라를 일부 흡수하며 시장 영향력을 확대했다.
한국 기업들이 철수하면서 현지 소비자와 거래처의 신뢰도 일정 부분 훼손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또 2021년에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당시 최고지도자가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한국산 가전제품 수입 금지를 지시한 상황이어서 한국 기업들의 시장 복귀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앞으로 제재가 완화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시장 지배력을 단기간에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과 이미 구축된 현지 유통망, 변화한 소비 환경 등을 다시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 "경제 제재 해소 여부가 핵심"
기업들도 아직은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쟁이 완전히 종료되고 상황이 안정되면 현지 인프라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지 등을 먼저 확인한 이후 가시적인 검토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도 "경제 제재 등이 완전히 해소된 이후 검토해 볼 수 있는 사안"이라며 "현재 직접 사업은 하지 않고, 현지 유통업체 중심으로 판매 협업을 진행해 왔다"고 했다.
다만 제재 완화가 현실화할 경우 중동 시장 확대 전략 차원에서 이란 재진출을 검토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입장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신규 성장 시장을 확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재 해제와 정치적 안정이 전제돼야 하지만, 이란이 다시 개방될 경우 글로벌 가전업체들의 경쟁도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