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안의 핵심에는 2024년 8월 시행된 '기업결합 시정방안 제출제도'가 있다.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기업결합에서 기업이 먼저 자구책을 제시하면, 공정위가 이를 토대로 조건부 승인을 검토하는 방식이다. 공정위는 제도 도입 당시 "인수합병(M&A) 불확실성을 줄이고 기업의 방어권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 심사 관행에 맞추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2025년에는 실제 반도체 소프트웨어 기업인 시높시스·앤시스 결합(자산 매각 조건), OTT 티빙·웨이브 임원겸임 건(요금 동결 조건)이 이 제도를 거쳐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제도가 취지대로 작동하는 듯 보였다.
경쟁제한 우려가 있다는 걸 인지한 어피니티도 같은 트랙을 밟았다. 2024년 SK렌터카를 인수한 데 이어 롯데렌탈 지분 63.5%를 약 1조6000억원에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했고, 공정위 심사관과 SK렌터카 매각을 포함한 시정방안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방안이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는 취지의 공문까지도 받았다. 쉽게 말해 'OK 사인'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 전원회의는 올 1월 기업결합 금지를 의결했다. 사모펀드가 렌터카 1·2위를 동시에 쥔 뒤 고가 매각을 위해 시장을 왜곡할 우려가 있고, 행태적 조치의 실효성도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업계가 주목하는 건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다. 실무 단계에서 공정위와 시정방안을 충실히 협의하고 공문까지 받았는데도 전원회의에서 뒤집혔다는 사실이 남긴 파장이 적지 않다. IB 업계에서는 "앞으로 시정방안 제출제도 트랙을 굳이 밟아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무 협의 결과가 전원회의에서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공정위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유인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전직 공정위 관계자는 "좋게 말하면 심사와 의결의 독립성이 보장됐다고 볼 측면도 있겠으나, 제도 도입 취지를 생각하면 이번 결정으로 불확실성이 더 가중돼 이번 사례로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남게 된 것은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더 나아가 대형 M&A를 검토하는 PEF와 전략적 투자자(SI) 모두 공정위 심사의 예측 가능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 나쁜 시나리오도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처음부터 시정방안 협의 자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다. 공정위가 "함께 해법을 찾자"며 설계한 제도가 아무도 쓰지 않는 창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근본적으로 이번 사태는 공정위 정책의 불확실성을 가중했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은 투자 결정의 전제 조건이다. 심사 결과를 가늠할 수 없는 환경에서 대형 딜을 추진할 투자자는 많지 않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롯데렌탈 한 건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M&A 시장 전반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롯데렌탈 건을 계기로 공정위는 업계와 소통해 기업결합 시정방안 제출제도의 어떤 부분이 보완이 돼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