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봉법 100일…교섭은 안정됐다지만 '사용자성 전쟁' 이제 시작

경제

뉴스1,

2026년 6월 22일, 오후 05:27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3.10 © 뉴스1 최지환 기자

개정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노봉법) 시행 100일을 맞아 정부는 당초 우려했던 '교섭 쓰나미' 없이 현장이 안정적으로 안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원청을 상대로 한 신규 교섭 요구는 시행 첫 달 이후 둔화했고, 교섭 절차도 법이 정한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하지만 산업계의 시선은 다르다. 노동위원회가 최근 구내식당 하청노동자까지 원청의 단체교섭 상대방으로 인정하면서 사용자성 판단 범위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대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부터는 원청의 교섭 의무 범위와 교섭 의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노봉법의 실질적 파급력을 가를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교섭 요구는 안정…사용자성 인정 사례는 빠르게 축적
2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봉법 시행 이후 지난 19일까지 원청 사업장 439곳을 대상으로 1161개 하청노조(16만4000명)가 교섭을 요구했다. 교섭요구는 법 시행 첫 달 363개 사업장에 집중된 이후 4월 405개소(42곳 증가), 5월 428개소(23곳 증가)에 그치는 등 증가세가 둔화했다. 원청 1곳당 평균 교섭 요구도 2.6건 수준으로 정부는 당초 우려했던 '교섭 쓰나미'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교섭은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다. 노동위원회 절차가 진행 중인 141개소 중 사용자성을 인정받은 원청은 103곳으로, 이 가운데 결정서가 송달된 사업장 상당수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들어갔다. 현재 교섭 절차를 진행 중인 원청은 모두 96곳, 이 가운데 51곳은 교섭창구 단일화까지 마친 상태로 현재 교섭 의제와 일정 등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인천의료원 등 10곳은 노사 상견례를 진행하는 등 이미 본교섭에 착수한 상태다.

정부의 이런 제도 안착 평가와는 달리 산업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최근 노동위원회의 판단이 기존 예상보다 훨씬 넓은 범위까지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이유에서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15일 한화오션 사내식당을 운영하는 웰리브 소속 노동자들에 대해 산업안전과 작업환경 문제는 원청이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같은 날 울산지방노동위원회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사건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노동위원회는 조리실과 세탁실, 통근버스 등 시설 개선이 원청 승인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실질적 지배력의 근거로 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도 "이번 판단은 산업안전과 작업환경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한 것으로 기존 해석지침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하반기 최대 쟁점은 교섭 범위…법원 판단도 분수령
산업계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원청의 교섭 의무가 제조공정을 넘어 구내식당과 경비, 시설관리 등 비핵심 외주업무까지 확대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특히 노동위원회 판단과 노동부 해석지침 사이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법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려면 하청노동자의 업무 수행에 대한 구조적인 통제력이 전제돼야 한다"며 "독립적인 사업체계를 갖춘 급식업체까지 일반적인 도급관계를 넘어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지원 업무까지 교섭 상대방을 확대할 경우 산업 전반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향후 교섭 의제가 어디까지 확대할지도 관심사다. 현재는 산업안전과 작업환경 중심이지만 향후 임금과 성과급, 복리후생은 물론 경영 판단 영역까지 교섭 요구가 확대할 가능성을 경영계는 경계하고 있다. 원·하청 구조가 복잡한 제조업 특성상 사용자성 인정 범위가 넓어질수록 기존 외주 운영 체계 전반의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아직은 본격적인 충돌보다 '전초전' 단계라고 진단한다.

김종진 노동사회연구소장은 "교섭 요구부터 노동위원회 판단, 실제 교섭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걸리는 만큼 제도의 효과를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평가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중노위 재심 결과가 잇따라 나오는 올 하반기부터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가 더욱 확대되고, 교섭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이나 쟁의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노란봉투법 시행 100일의 성적표는 '교섭 요구가 얼마나 많았느냐'보다 원청 사용자성의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질 것인지, 그리고 이를 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정리할 것인지가 하반기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날 노봉법 시행 100일을 맞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에 나선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법 시행 이전 우려와 달리 공공부문에서도 노정 협의체를 중심으로 대화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제도가 예상한 범위 안에서 안정적으로 안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노위에서의 '사용자성 인정' 비율이 높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중앙노동위원회와 노동부가 함께 마련한 판단 기준에 따라 개별사안을 심사한 결과"라며 "현행 지침과 노동위원회 판단이 큰틀에서 일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에도 제도나 지침을 당장 손질하기보다는 현행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덧붙였다.

euni1219@news1.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