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도착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6.5.12 © 뉴스1 안은나 기자
27년간 고정되어 있던 출국납부금이 인하되면서 관광산업의 유일한 재원인 '관광진흥개발기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가 관광 재원을 늘리는 사이 한국만 역행하면서 관광 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출국납부금 현실화, 왜 지금인가' 토론회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관광 유관 단체 등 업계 핵심 인사들이 참석해 재원 확충의 시급성을 호소했다.
현재 국회에는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출국납부금 2만 원 인상안(관광진흥개발기금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한국인이 해외 출국 시 항공권에 포함돼 징수되는 출국납부금은 8000원(관광진흥개발기금 7000원·질병퇴치기금 1000원)이다. 2024년 7월 윤석열 정부가 국민 부담 경감을 이유로 기존 1만1000원에서 3000원 인하한 결과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출국납부금 현실화, 왜 지금인가' 토론회. 황준석 한국여행업협회 상근부회장(왼쪽부터), 박성혁 한국관광공사 사장,유용종 한국호텔업협회 회장,이경수 한국관광협회중앙회 회장,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혜진 경기대 관광개발경영학과 교수, 조광익 한국관광학회 수석부회장, 강동진 문체부 관광정책관(한국관광공사 제공)
'관광 재원' 늘리는 세계, 역주행하는 한국
글로벌 관광 시장에서 주요국들은 관광 재원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추세다. 일본은 7월 1일부터 국제관광여객세를 기존 1000엔에서 3000엔(약 2만 8500원)으로 3배 인상하며 확보된 재원을 출입국 절차 개선, 관광 인프라 정비, 오버투어리즘 대응 등에 투입한다.
태국 역시 이달 20일부터 출국세를 약 50% 인상한 5만 4000원 수준으로 올렸다. 호주는 1978년 10호주달러에서 현재 80호주달러까지, 영국은 장거리 노선 기준 10파운드에서 216파운드까지 지속적으로 세액을 인상해 왔다.
조계원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그림자 조세'라며 출국납부금을 깎았지만 결과적으로 기금 부채만 심화됐다"며 "OECD 평균 출국세가 2만 9000원인데 한국은 7000원이다. 한 사람당 2만 2000원의 재원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류광훈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박사(한국관광공사 제공)
기금 고갈에 가로막힌 관광 정책
발제를 맡은 류광훈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박사는 관광기금의 심각한 재정 현실을 수치로 드러냈다.
2026년 문체부 관광 분야 일반회계 배정액은 20억 원에 불과하다. 사실상 약 1조 2000억 원의 관광진흥개발기금이 정책의 유일한 재원인 셈이다. 문제는 이 기금마저 출국납부금 인하로 쪼그라들고 있다. 2025년 징수액은 2624억 원으로, 2019년(약 4000억 원) 대비 1350억 원 넘게 감소했다.
류 박사는 "1350억 원은 지자체 보조율 50%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3000억 원에 달하는 관광 정책 예산이 증발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빚도 상당하다. 코로나19 기간 수입 급감으로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2조 4000억 원을 차입해 연간 500억 원의 이자만 부담하고 있다. 류 박사는 "1997년 도입 이후 27년간 고정된 금액을 오히려 30%나 깎은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명목 GDP는 4배 성장했는데 출국납부금은 제자리였다"고 비판했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출국납부금 현실화, 왜 지금인가' 토론회(한국관광공사 제공)
사용처 투명성·구조 개선으로 국민 신뢰 얻어야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기금의 구조적 문제를 짚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광익 한국관광학회 수석부회장은 "출국납부금을 내는 사람은 출국자인데 혜택은 관광사업자가 받는 구조"라며 "납부자와 수혜자가 일치하지 않는 미스매치가 기금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광진흥개발기금 1조2000억원 가운데 약 6500억원이 관광사업자 융자에 투입되는 구조다.
조 부회장은 "기금을 국민에게 바우처·지역화폐 등으로 지원해 국민이 지역에서 소비하고 그것이 관광사업자에게 돌아가는 간접 지원 방식도 검토해야 한다"며 "정부 출연금 확대, 카지노 납부금 인상, 숙박세 도입 등 다양한 재원 확보 방안을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경수 한국관광협회중앙회 회장은 확보된 재원의 투자 방향으로 지역관광 혁신 투자, 국민 여행 안전 강화, 관광 수용태세 개선 등 3가지를 제시하며 "얼마를 올리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쓰이는지 국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용종 한국호텔업협회 회장은 "출국세가 있는 줄도 모르는 국민이 대부분"이라며 "올해 이미 관광기금이 소진돼 지방 호텔은 융자 지원조차 못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황준석 한국여행업협회 상근부회장도 "기금 사용처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인상에 대한 국민 수용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수 한국관광협회중앙회 회장(왼쪽), 박성혁 한국관광공사 사장(한국관광공사 제공)
"관광기금은 가장 확실한 투자 재원"…3000만 시대 대비 절실
박성혁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기금 재원으로 거둔 구체적 성과를 제시했다.
올해 1~4월 방한 외래객 677만명(전년 대비 21.4% 증가), 외국인 소비액 약 8조원(47.3% 증가), 지방공항 입국 45.3% 증가, 외국인 지역 소비 42.7% 급증 등이다.
박 사장은 "숙박세일페스타 152만장 쿠폰 제공, 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 지원금 대비 9배 경제 파급 효과 등 이 모든 성과의 중심에 관광기금이 있었다"며 "2028년 외래관광객 3000 만명 목표 달성을 위해 기금 재원의 안정적 확보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강동진 문체부 관광정책관은 "관광산업은 외부 충격에 가장 취약하지만 위기가 닥칠수록 재원은 급감하는 역순환 구조에 있다"며 "외래관광객 3000만 조기 달성을 위해서는 출국납부금 현실화를 통한 관광기금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법안 개정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seulbi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