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뱅크앱을 켜면 사용자가 볼 수 있는 하단 메뉴들이다. 첫 화면 상단에는 ‘반도체 주식 VS ETF, 나에게 맞는 투자법은?’이란 배너가 눈에 들어온다. 만약 한국어를 읽을 수 있지만 카카오뱅크를 모르는 외국인이 본다면, 이 화면이 은행앱 첫 화면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급격한 디지털 전환과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금융권에서는 업종·서비스 간 경계가 흐려지고 서로 다른 영역이 결합하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은 더이상 은행, 보험, 증권 등 업권별 경계를 의식하지 않고, 직관적이고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선택하고 있다. 특히 코스피지수가 1만 포인트를 눈앞에 둔 증시 호황 속에서 ‘투자’라는 단어는 금융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 최근 신한금융그룹이 전 계열사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 내놓은 슈퍼앱 ‘신한 슈퍼 SOL’에서도 첫 화면 상단에는 고객의 ‘자산’ 현황이, 하단에는 홈, 금융, 상품, 혜택, 주식 등 5개 메뉴를 제시했다.
하지만 유독 퇴직연금에서는 여전히 업권간 벽이 존재해 금융소비자의 편리한 이용을 가로막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은행권과 보험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퇴직연금 계좌 ETF 실시간 매매 허용이다. 증시 호황으로 퇴직연금을 활용한 적립식 ETF 투자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은행·보험앱에서는 퇴직연금(DC형)계좌를 통한 ETF 실시간 거래나 가격 조회를 할 수 없다. 은행·보험앱에서 ETF를 거래하려면 다른 플랫폼에서 가격을 조회해야 하고, 매수 주문부터 거래 체결까지 최소 10분 이상, 장 마감 직전 주문 시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는 은행·보험사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증권사로 옮겨가는 머니무브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주가 변동폭이 큰 시장 상황에서 금융소비자들이 서비스이용의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퇴직연금 총괄 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최근 열었던 퇴직연금 운용사 관계자 워크숍에서도 이런 상황을 반영해 전 업권의 실시간 ETF 매매 허용 건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정작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은행·보험 등의 실시간 ETF 매매는 자본시장법 제11조(무인가 영업행위 금지)에 따라 전업주의 위반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다. 반면 증권사 등은 자본시장법상 다른 업무를 겸업할 수 있고, 은행의 고유영역인 수신 기능도 CMA계좌를 통해 유사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CMA계좌 잔액은 이달 19일 기준 110조 4061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100조 3392억원과 비교해 10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금융소비자 보호와 불합리한 금융서비스 개선을 강조해왔다. 은행·보험사 퇴직연금 가입자들도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실시간 ETF 거래 허용을 위한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래픽=제미나이 AI 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