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은 22일(현지시간) 주택가격 안정화법안에 대한 절차 표결에서 찬성 85표, 반대 5표로 가결했다. 이 법안은 미국인들의 주택 구입 부담을 낮추고 월가 투자자들의 단독주택 매입을 제한하는 내용을 핵심 골자로 하지만, 미국 CBDC 발행을 금지하는 조항까지 포함돼 있다.
이날 처리된 법안은 연준과 각 지역 연방준비은행이 CBDC 또는 이에 실질적으로 유사한 디지털자산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발행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법안은 “연준 또는 지역 연은은 CBDC 또는 이에 실질적으로 유사한 디지털자산을 금융기관이나 기타 중개기관을 통하든 그렇지 않든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발행하거나 창출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특히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directly or indirectly)’라는 문구가 이번 조항의 핵심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연준이 상업은행이나 결제회사를 활용해 우회적으로 디지털 달러를 발행하는 방식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CBDC 반대론자들은 그동안 단순한 발행 금지 조항만으로는 연준이 민간 금융기관을 통해 사실상 CBDC를 도입할 가능성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이번 금지 조치는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법안에 따르면 해당 조항은 2030년 말까지 효력을 유지하며 이후에는 의회의 재승인이 필요하다.
그동안 미국 내 CBDC 반대론자들은 디지털 달러가 정부 감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 역시 인준 청문회에서 CBDC를 “잘못된 정책 선택(bad policy choice)”이라고 평가하며 이번 법안의 취지에 힘을 실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올해 초 행정명령을 통해 디지털 달러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과 개인 프라이버시, 미국의 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번 상원 표결은 수년간 이어져 온 반(反) CBDC 운동의 결과물로 평가된다. 그동안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 등 일부 주정부는 자체적으로 CBDC 반대 법안을 추진해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헨리 맥매스터 주지사는 최근 CBDC 도입을 제한하고 개인의 자산 자가보관(Self-Custody) 권리를 보호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의회도 지난해 주지사의 거부권을 무력화하고 연방 CBDC 도입을 반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주 차원의 움직임은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이번에는 정치권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는 주택법안에 CBDC 금지 조항을 포함시키면서 초당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 기조를 법률로 고착화하는 의미도 가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연방정부 기관들이 CBDC를 개발하거나 장려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이전 정부가 진행해온 디지털 달러 연구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이번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행정명령 수준에 머물던 정책이 연방법으로 격상돼 향후 정권 교체가 이뤄지더라도 2030년 이전에는 디지털 달러 프로젝트를 재추진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하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하원 지도부는 이르면 이번 주 법안을 신속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하원이 수정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해당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되며, 대통령 서명을 거쳐 정식 법률로 확정된다.
가상자산 업계 역시 이번 법안의 향방을 주목하고 있다. 연방정부가 발행하는 디지털 달러가 금지될 경우 민간 스테이블코인 업계 입장에서는 가장 강력한 잠재 경쟁자가 사라지게 된다. 이에 따라 달러 기반 민간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비트코인 지지자들에게도 이번 조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정부가 통제하는 디지털 화폐와 탈중앙화된 디지털자산 사이의 차이를 법적으로 명확히 구분하는 첫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안이 최종 통과될 경우 미국은 전 세계에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법률로 금지한 몇 안 되는 국가 또는 지역에 포함된다. 이는 수십 개 국가가 현재 CBDC 시범사업을 추진하거나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글로벌 흐름과는 상반된 행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