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한 지역에 있는 유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로이터=뉴스1
국내 정유 업계가 중동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해 4년 11개월 만에 남미 콜롬비아에서 원유를 도입했다. 중동 외 지역에서 중질유를 확보하기 위한 초석으로 보인다.
수급 안정을 위해 도입한 경질유로는 국내 정유사의 중질유 정제 고도화 설비 효율성을 높이는 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이번에 도입한 콜롬비아산 중질유는 경질유와 혼합하거나 정제 테스트에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콜롬비아산 '중질유' 4년 11개월만 도입…공급망 다변화 지속
24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내 정유 업계는 콜롬비아산 원유 30만 배럴을 배럴당 103달러에 도입했다. 이는 2021년 6월 배럴당 63.28달러에 100만 배럴을 들여온 이후 4년 11개월 만에 가동된 남미 중질유 수입 라인이다.
그동안 국내 정유사들은 전통적으로 중동 지역에서 산출되는 중질유를 주력으로 다뤄왔으나, 최근 호르무즈 해협 통항 불안이 겹치며 원유 수급 구조를 다변화하고 있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5~7월 국내 원유 도입 대륙별 비중은 △중동 48.5% △미주 35.6% △아시아 7.4% △아프리카 8.3% △유럽 0.3% 순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69.1%를 차지했던 중동산 비중이 20.6%P 떨어지며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면 미주 지역 비중은 35.6%로 확대됐고, 아프리카,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원유를 조달하면서 공급망이 다변화한 양상이다.
이 같은 변화의 핵심 원인은 짙어진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다. 미국과 이란이 최근 종전에 잠정 합의했음에도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와 통항료 현실화 조치 등은 중동 리스크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20%가 통과하는 요충지다. 우리나라는 중동 원유 도입량의 대부분을 해당 항로에 의존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할 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美 경질유 한계 보완… '남미산 중질유' 혼합·정제 테스트
이란 사태 이후 국내 정유 업계는 수급 안정성을 위해 미국산 원유 도입을 늘려왔다. 다만 정제 설비 효율화 측면에서 최적화가 어려워 여전히 중질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원유는 대부분 불순물이 적고 가벼운 경질유로 분류된다. 반면 국내 정유사의 고도화 설비는 중질유 가공에 적합하다.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중질유를 정제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뽑아내는 것이 국내 정유사의 경쟁력이다. 비싼 경질유를 전면 적용하기에는 정제 마진을 확보하는 데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업계는 경질유에 중질유를 혼합해서 정제시설을 가동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본다. 기존의 중동산 중질유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중질유 수급처 발굴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번에 수입 라인을 재가동한 콜롬비아 등 주요 남미산 유종은 중질유의 특성을 보인다. 해당 유종은 황 함량이 높고 불순물이 많아 가공과 정제 과정이 까다롭다. 하지만 정제 고도화 설비와 탈황 설비를 갖춘 국내 정유사들에는 오히려 정제 마진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이번에 콜롬비아에서 들여온 30만 배럴은 경질유에 혼합하거나 정제 테스트를 위해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해상 운송 단가 등을 고려할 때 단기적인 경제성을 확보하기엔 매우 소규모 물량이다. 통상 초대형 유조선(VLCC) 한 척이 원유 200만 배럴을 운송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규모로 볼 수 있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각 기업이 가동하는 설비 용량에 따라 소진 속도가 다르지만, 30만 배럴은 이틀을 채 쓰지 못하는 소규모 물량"이라며 "공정 특성상 끊임없이 원료가 공급돼야 하므로 기존 원료에 섞어 쓰려는 혼합 목적이거나 새로운 원료를 시험해 보기 위한 테스트용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HMM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유니버설 위너호가 울산항에 입항하고 있다.(울산항만공사 제공)/뉴스1
SK에너지 선제 대응…중동 의존도 장기 50% 목표
정유사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도 한층 구체화하고 있다. SK에너지는 '에너지 안보 강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응해 원유 도입선 다변화 투자를 지속할 방침이다.
종전 잠정 합의로 중동산 원유 공급이 재개될 길이 열렸다. 그러나 SK에너지는 전쟁으로 부각된 높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이번 기회에 줄이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제 설비가 중동산 원유에 최적화돼 있는 만큼 원유 도입 다변화에 대비한 설비 투자도 진행할 계획이다.
계획에 따라 현재 약 70% 수준인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을 향후 50%까지 점진적으로 낮출 예정이다. 지정학적 위기에 상대적으로 덜 휘둘릴 수 있도록 체질 개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목표 달성을 위해 SK에너지는 중동 물량을 대신해 캐나다, 미국, 브라질, 에콰도르 등 미주 대륙을 중심으로 역외 중질유 물량을 늘릴 계획이다.
ji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