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땅·전력·용수 없다"…후공정 예상 깨고 생산라인 배치

경제

이데일리,

2026년 6월 24일, 오후 07:04

[이데일리 김정남 김소연 공지유 기자] “메모리 반도체 생산공장(전공정)까지 들어서면 말 그대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투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공정 생산라인까지 더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추진하면서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초 초기에 알려진 후공정 패키징 공장 신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판이 펼쳐질 수 있어서다. 두 회사가 정부와 조율한 투자 기간은 추후 10년 전후이고, 그 규모는 500조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AI) 시대 들어 메모리 최대 강국으로서 입지를 굳히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다만 업계와 학계는 이번 초대형 프로젝트를 다소 조심스럽게 보는 기류도 있다. 메모리 생산능력 확충 차원에서 의미가 크지만, 대규모 초고압 전력망과 공업용수, 반도체 핵심 인력 등 넘어야 할 산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靑 김용범, ‘호남 클러스터’ 첫 확인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24일 정치권을 중심으로 얘기가 나오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처음 공식 확인했다. 그는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에서 “(메모리) 수요가 폭발하면서 이미 예고돼 있던 설비 건설을 앞당겨야 하는 상황”이라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 논의 마무리 단계가 다가오고 있다. 확정이 되면 기업들과 부처가 모여 한 번에 국민에게 설명해 드리는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그래픽=김일환 기자)
이번 투자가 특히 주목 받는 것은 후공정 외에 전공정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전공정은 메모리 제조 과정에서 웨이퍼 위에 회로를 형성해 메모리 셀과 소자를 구현하는 단계를 말한다. 후공정은 완성된 칩을 절단·패키징·검증해 실제 쓸 수 있는 제품으로 완성하는 단계다.

삼성전자는 현재 경기 평택·기흥·화성과 충남 천안·온양에 반도체 거점을 두고 있다. 이 중 후공정은 충남권에서 맡고 있다. 최근에는 후공정 일부를 베트남 같은 해외로 분산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그만큼 후공정은 상대적으로 이전이 용이한 편이다. 이 때문에 호남 투자건 역시 후공정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독대하고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따로 회동하기로 하면서 호남 생산공장 건설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 1기를 건설하는 투자비는 적어도 60조~70조원은 든다. 이를 근거로 추정해보면 이번 호남 클러스터 투자 규모는 500조원 안팎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전공정이 들어가며서 따라 올 소부장 중소·중견 기업들과 물류, 장비 유지·보수 등까지 더하면 경제 효과는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용범 실장은 “수도권에 더 지으려 해도 땅도, 전력도, 용수도 없다”며 “그렇다고 해외로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호남은 국내 최대 수준의 재생에너지 기반을 갖춰 수도권보다 전력 수급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폭발하는 AI 수요에 맞춘 메모리 생산능력 확충, 정부 지역균형 발전 의지에 대한 화답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AI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 생산거점 논의는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유력 후보지로는 첨단3지구(광주·장성), 솔라시도(해남), 광주공항 부지 등이 거론된다.

◇“전력·용수·인력·물류 등 과제 산적”



최기영 한국반도체공학회장(전 과기정통부 장관)은 “수도권에 반도체 생산시설이 과도하게 밀집돼 전력·용수가 부족하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생산 차질 위험이 커질 수 있는데, 지역 분산은 이런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했다.

다만 워낙 큰 프로젝트인 만큼 우려 역시 만만치 않다. 당장 결정이 이뤄진다고 해도 송전망·용수관로 구축, 주민 수용성 확보, 환경영향평가 등 추가 절차가 산적하다. 업계 안팎에서는 실제 공장 가동까지 길게는 10년 정도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호남권의 강점인 재생에너지가 과연 반도체 공장을 돌리는데 충분한지 여부 역시 아직 미지수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반도체 공장 가동은 불가능하다”며 “원자력 등 안정적인 전력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도권, 충청권 등 기존 클러스터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진 지역이라는 점도 전문 인력 확보, 물류 용이성 측면에서 부담이다.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을 지낸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는 전문 인력 확보 측면에서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며 “산학협력 등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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