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부터 25일(현지시간)까지 미국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에서 '사명이 이끄는 혁신(Driven by Purpose)'을 주제로 열린 바이오USA에는 70여 개국에서 제약·바이오 기업과 투자자, 연구기관 관계자 2만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약 1200명을 파견했고, 부스 없이 개별 미팅·발표 하는 기업까지 더하면 참가 기업이 약 350곳에 달해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지난해 약 300곳). 올해 행사 핵심 키워드는 미·중 공급망 재편, 오픈이노베이션 확대, AI 신약개발, 항체약물접합체(ADC), 비만·대사질환으로 압축된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특허 만료와 성장 정체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 혁신 기술 확보에 적극 나서면서 국내 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는 분석이다.
가장 눈에 띈 변화는 한국 기업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구체적 협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행사 사상 처음으로 한국 바이오산업을 단독 조명하는 공식 세션 '코리아 라이징(Korea Rising)'이 신설된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3일 열린 이 세션에서 글로벌 제약사와 투자자들은 한국이 더 이상 CDMO 중심 국가가 아니라 혁신 신약과 플랫폼 기술을 창출하는 차세대 바이오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협력 사례도 가시화됐다. 행사 개막 첫날부터 국내 바이오벤처 갤럭스와 에즈큐리스가 아스트라제네카와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공개됐다. 단순 1대1 미팅을 넘어 기술이전을 염두에 둔 공동연구 단계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K바이오 오픈이노베이션의 성과 사례로 꼽힌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아스트라제네카가 운영하는 프로젝트 NOVA를 통해 진행된 이번 협력은 정부·공공기관·글로벌 제약사가 국내 바이오텍의 기술을 발굴해 해외 연구개발 협력으로 연결한 사례다. 특히 아스트라제네카는 AI·머신러닝 기반 신약개발, ADC, 세포치료제, 면역항암제, 방사성의약품 등 차세대 모달리티 발굴 의지를 강조하며 국내 기업과의 추가 협력 가능성을 열어뒀다.
글로벌 빅파마 투자 움직임도 확인됐다. 스콧 드와이어 베링거인겔하임 글로벌 사업개발·라이선싱 총괄은 코리아 라이징 세션에서 "한국의 혁신 기술에 주목한 지 10년이 넘었고, 지금까지 6건 이상의 거래를 체결했다"며 "한국에는 기업가 정신과 과감한 도전 문화가 있어 지속해서 기술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USA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스.(사진=송영두 기자)
◇美 생물보안법 호재...국내 CDMO 기업 수주전
이번 행사에서는 미국 생물보안법 추진으로 중국 기업과의 거래가 불확실해지면서, 안전한 대체 파트너를 찾는 글로벌 바이어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한국 기업 부스마다 바이어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형 기업들은 글로벌 수주와 사업 확장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14년 연속 단독 부스를 운영하며 위탁연구(CRO), 위탁개발(CDO), 위탁생산(CMO)을 아우르는 CRDMO 경쟁력을 강조했다. 행사 시작 전 예약된 미팅만 90건에 달했고 현장 미팅도 이어졌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현장 간담회에서 올해 15~20% 성장 전망을 재확인하고, 미국 록빌 생산시설과 6공장 증설, 네덜란드 영업 거점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3대 축 확장 전략을 제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연내 6공장 건설 여부를 결정하고, 2032년까지 송도 제2바이오캠퍼스 완성을 통해 국내 생산능력을 132만5000ℓ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록빌 공장을 포함하면 글로벌 총 생산능력은 138만5000ℓ 규모로 늘어난다. 제3바이오캠퍼스는 기존 항체 중심 생산시설과 차별화하기 위해 펩타이드, 특히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생산 수요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사업 모델도 생산설비 중심에서 플랫폼 기술 중심으로 넓어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USA 현장에서 고객사가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초기 단계부터 자체 플랫폼을 제공해 장기 고객으로 확보하는 '얼리 락인' 전략을 공개했다. 단순 생산 수주를 넘어 플랫폼 라이선스 사업까지 확장해 CDMO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 셀트리온 부스 모습.(사진=셀트리온)
셀트리온(068270)은 AI, ADC, 다중항체를 앞세워 글로벌 신약 기업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부각했다. 셀트리온은 행사 기간 사전 약속 기업을 포함해 최대 200개 기업과 파트너링을 진행했다. 부스 방문객도 지난해 1800명을 웃도는 2000명을 넘어서며 비즈니스 미팅 수와 방문객 수 모두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셀트리온은 이번 행사에서 AI 기반 신규 타깃 발굴, 차세대 다중항체 설계 기술, 개발 가능성 평가, 데이터 기반 연구 플랫폼 등을 소개했다. 기존 바이오시밀러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 ADC와 다중항체, AI 신약개발 등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려는 전략이 글로벌 파트너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평가다.
롯데바이오로직스도 송도 바이오캠퍼스 제1공장을 앞세워 CDMO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회사는 글로벌 빅파마 고객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공장 완공 일정을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시러큐스 공장과 송도 공장을 연결하는 '듀얼 사이트' 생산 전략과 ADC 생산 역량을 함께 강조했다. 연내 대형 상업 수주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국내 CDMO 기업 간 글로벌 고객 확보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막한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조성된 한국관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사진=송영두 기자)
◇바이오벤처 존재감 확대, 진단·유전체로 영역 다변화
바이오벤처들의 존재감도 커졌다. 아리바이오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AR1001의 글로벌 기술이전 이후 바이오USA 현장에서 추가 협력 가능성을 모색했다. 푸싱제약이 AR1001 외 다른 파이프라인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단일 계약을 넘어 후속 파트너십으로 확장될 수 있는 대목이다.
뉴로핏(380550)은 알츠하이머 치료제 시장 확대와 함께 영상 바이오마커 기술에 대한 글로벌 관심을 확인했다. 로슈, 일라이릴리 등과 추가 계약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진단·분석 기술 기반 바이오텍도 글로벌 파트너링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이노크라스 역시 유전체 분석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빅파마와 실제 매출을 내는 사례로 주목받았다.
올해 바이오USA는 K바이오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보여준 무대였다. 과거에는 글로벌 기업 부스를 찾아다니며 미팅 기회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는 한국관과 국내 기업 부스를 찾는 글로벌 기업의 발길이 늘었다. 한국 기업의 기술이 글로벌 빅파마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미팅 건수 주목보단 '후속 성과' 관건
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시장의 이목을 끌 만한 대형 기술수출 발표는 예년보다 적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오USA 현장 미팅이 곧바로 기술수출이나 투자 유치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 계약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임상 데이터, 차별화된 기전, 제조 가능성, 지식재산권, 후속 개발 역량까지 입증해야 한다. 특히 투자자 관점에서는 파트너링 미팅 건수보다 반환 의무 없는 계약금 규모, 계약 상대방의 개발 의지, 임상 진입 가능성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구조적 과제도 남아 있다. 국내 기업 상당수가 전임상·임상 1상 단계 기술은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글로벌 빅파마가 선호하는 임상 2상·3상 후기 파이프라인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단순 플랫폼 소개를 넘어 후기 임상 데이터와 상업화 가능성을 입증해야 빅파마의 투자를 끌어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바이오USA는 K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더 이상 주변부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자리였다"며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확인한 관심을 실제 공동연구, 투자, 기술이전, 상업 수주로 연결하는 실행력"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