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홍콩의 디지털자산 정책이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와에 이어 채권·파생상품 결제 인프라까지 넓어지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발행사를 규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채권을 발행하고 대금을 주고받는 방식까지 디지털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최근에는 파생상품 야간거래 증거금 납입에도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를 활용하는 실험이 시작됐다.
홍콩 빅토리아하버 너머로 보이는 금융가 전경. 홍콩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이어 디지털채권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을 확대하고 있다. / 사진 = 로이터
올해 들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채권시장이다. 홍콩주택금융공사(HKMC)는 이달 120억홍콩달러(약 2조3600억원) 규모의 공모 디지털채권을 발행했다. 홍콩 공공부문 기관이 디지털채권을 발행한 첫 사례다. 이번 채권은 2년물·5년물 홍콩달러 채권과 3년물 역외위안화 채권으로 나눠 발행됐으며, 100개가 넘는 계좌에서 약 240억홍콩달러(4조 7000억원) 규모 주문이 들어왔다.
이번 발행은 정부가 주도하던 토큰화 채권 실험이 공공기관의 실제 자금 조달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서 홍콩 정부의 채권 토큰화 실험은 몇 년 전부터 단계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지난 2021년 국제결제은행(BIS) 혁신허브와 채권 토큰화 개념검증을 진행했으며, 2023년 세계 최초로 정부 토큰화 그린본드를 발행했다. 이어 2024년에는 홍콩달러와 위안화, 달러, 유로 등 다통화 디지털채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뿐 아니라 대금을 결제하는 방식까지 진전이 이뤄졌다. 홍콩 정부는 3차 디지털 그린본드를 발행하면서 홍콩달러 채권에는 홍콩달러 디지털화폐(e-HKD), 위안화 채권에는 중국 디지털위안화(e-CNY) 결제 옵션을 붙였다. 이전까지의 실험이 채권을 디지털 형태로 발행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면, 이때부터는 투자자가 채권을 살 때 내는 돈까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홍콩달러 디지털화폐, 즉 e-HKD는 일반 소비자가 결제앱처럼 쓰는 화폐라기보다 토큰화 자산 결제와 금융기관 간 결제등에 활용할 수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다. 민간 스테이블코인보다 결제 안정성이 높고, 은행 영업시간 밖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홍콩은 약 9년전인 2017년부터 디지털화폐 관련 연구를 시작했고, 그동안 여러 차례 파일럿을 통해 토큰화 자산 결제와 온라인·오프라인 결제 가능성을 시험해 왔다.
최근에는 채권에서 확인된 디지털화폐의 활용 가능성을 파생상품 시장에도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홍콩거래소(HKEX)는 이달 파생상품 야간거래 시간대 사전 증거금 납입에 도매형 홍콩달러 디지털화폐(e-HKD)를 활용하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번 실험은 파생상품 거래 자체를 디지털화폐로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야간거래 중 필요한 증거금 납입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파생상품은 정규 장이 끝난 뒤에도 거래가 이어지지만 실제 자금을 옮기고 확인하는 절차는 은행 결제망 운영 시간에 영향을 받는다. 홍콩 당국은 24시간 작동 가능한 e-HKD를 활용해 이 시간차를 줄일 수 있는지 시험한다는 계획이다.
홍콩 당국은 이 같이 여러 분야에서 디지털 화폐의 활용도를 넓혀나가는 동시에 자산 토큰화의 안착을 위한 제도 정비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홍콩금융관리국은 이달 HSBC, 스탠다드차타드, JP모건, UBS 등 글로벌 금융회사와 해시키, 앤트디지털 등 디지털자산 기업 등으로 구성된 토큰화 채권 전문가그룹을 출범시켰다. 이들은 토큰화 채권의 발행·거래·결제 과정에서 필요한 법적 기록, 시장 관행, 기술 표준 등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홍콩의 실험이 곧바로 자본시장 전반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e-HKD를 활용한 파생상품 증거금 납입은 아직 파일럿 단계이고, 실제 도입을 위해서는 규제 승인과 청산참가자의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 토큰화 채권도 공공부문과 일부 기관투자자 중심에서 민간 발행시장으로 넓어져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디지털채권,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한데 묶으려는 홍콩의 구상은 분명해졌지만, 당분간은 시장 검증과 제도 정비가 함께 진행되는 과도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