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투기등급 턱밑 덮친 ‘책준 포비아’…신탁업계 연쇄 크레딧 위기

경제

이데일리,

2026년 6월 30일, 오전 04:41

[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우리자산신탁과 한국자산신탁 등 주요 부동산 신탁사들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서 업계 전반으로 크레딧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호황기 시절 수익을 견인했던 ‘책임준공형(책준형) 토지신탁’이 우발채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이를 막기 위해 무리하게 투입한 ‘신탁계정대’마저 거대한 부실 자산으로 불어나면서 대외 신인도가 크게 훼손됐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만큼 고정이하 자산비율 등 건전성 지표 악화에 따른 추가적인 신용도 하방 압력은 당분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의 한 주택재개발 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주택재개발 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29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NICE신용평가(나신평)는 지난 26일 우리자산신탁과 한국자산신탁의 기업신용등급(ICR)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A-는 기관 투자자들의 투자 마지노선으로 분류되는 만큼, 자본시장 내 자금 조달 여건이 급격히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리아신탁 역시 나신평으로부터 신용등급 전망이 ‘BBB(안정적)’에서 ‘BBB(부정적)’으로 조정됐고, 교보자산신탁은 한국신용평가로부터 기업어음 신용등급이 ‘A2-’에서 ‘A3+’로 하향 됐다. ‘부정적’ 전망은 중기 내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연쇄 강등의 핵심 뇌관은 호황기 외형 성장을 이끌었던 책준형 토지신탁과 신탁계정대의 부실화다.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시공사 부실과 공사 지연이 줄을 이었고, 신탁사들이 책임준공 의무에 따라 떠안아야 했던 우발채무가 본격적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청구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무리하게 투입한 자체 자금이 오히려 신탁사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 기한 내 완공을 위해 부실 시공사 대신 긴급 공사비로 쏟아부은 일종의 ‘방어용 자금’이 재무제표상 ‘신탁계정대’로 눈덩이처럼 쌓이면서 건전성이 급격히 훼손된 것이다. 사업성 검토 없이 외형 확장에 집중했던 신탁사일수록 이 같은 부메랑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우리자산신탁은 책준 기한을 넘긴 사업장에 대한 PF 원리금 대지급 등 우발채무가 현실화되며 지난해 220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한국자산신탁 역시 영업이익이 2022년 1011억원에서 2025년 9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부족한 자금을 메우기 위해 투입한 신탁계정대는 2022년 말 2240억원에서 지난 3월 말 7394억원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이 중 회수 지연 위험이 높은 ‘고정이하’ 사업장 관련 비중이 84.2%에 달해 자산건전성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신용도 하방 압력은 비우량 등급 신탁사로 갈수록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보자산신탁은 책준형 리스크 현실화로 지난 2024년 2409억원, 2025년 1496억원의 적자를 연이어 기록하며 자본 완충력이 크게 흔들렸다. 코리아신탁도 지난해 843억원의 순손실을 냈고, 자기자본 대비 신탁계정대 비율이 186.5%까지 치솟은 상태다. 등급 구간을 가리지 않고 신탁업계 전반에서 동일한 부실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 같은 건전성 악화가 개별 신탁사의 실적 부진을 넘어 업계 전반의 유동성 고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부실 사업장에 자체 자금을 수혈하기 위해 외부 차입을 늘려야 하는데, 정작 훼손된 대외 신인도 탓에 조달 비용은 갈수록 불어나는 악순환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자산신탁의 총차입금은 2023년 말 100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3643억원으로 급증했고, 순차입금의존도도 2%에서 20.8%로 치솟았다. 신용도 하방 압력이 가속화될 경우 외부 자금 조달 창구가 좁아지면서 신탁업계 전반의 자체적 유동성 대응 능력이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과거 호황기에 공격적으로 수주했던 책임준공형 사업장과 신탁계정대의 건전성 저하가 신탁업계 전반의 자본완충력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이라며 “부동산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의미 있는 수익성 개선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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