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 뉴스1 김도우 기자
정부가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이 대기업·중견기업 등 '경제적 강자'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거래조건을 공동으로 협상하는 행위를 공정거래법상 담합으로 보지 않도록 법체계를 개편한다.
또 노동조합의 정당한 단체행동은 사업자적 성격을 띠더라도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조사·제재를 면제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0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乙의 협상력 강화를 위한 제도 개편 방안'을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및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심의·의결 했다고 밝혔다.
소기업·소상공인 816만 곳 단체협상 허용…통지 즉시 5년 면제
이번 제도 개편방안은 국내 사업자의 98.2%(816만 개사)에 해당하는 소기업·소상공인의 단체협상을 심사 없이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공정위는 이들의 연합 필요성은 큰 반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협상 참가자가 모두 '중소기업기본법'상 소기업(소상공인 포함)일 때 대기업 및 모든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단체협상에 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거래조건·거래량·거래지역 등에 대한 합의나 정보교환도 단체협상에 필요한 범위에서 허용된다.
현행법상 소기업은 자산총액 5000억 원 미만 등 중소기업 요건을 충족한 기업 가운데 업종별 3년 평균 매출액이 15억~140억 원 이하인 기업을 말한다.
이번 개편으로 영향을 받는 대기업은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회사 약 3300개 사다.
단체협상을 개시하는 소기업·소상공인은 협상참가자, 상대방, 행위내용을 공정위에 통지하고 통지 즉시 담합 규정 적용이 면제돼 5년간 효력이 지속된다.
다만 사후에 소비자 이익에 현저한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에 한해 '향후' 금지명령이 부과된다. 여기에는 중간재 공급 중단으로 인한 최종재 생산 불가능, 소비자가격의 현저한 상승 등이 포함된다.
선중규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전날(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사전브리핑에서 "현저한 침해에 해당하는 구체적 기준은 하위규정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라며 "제품 공급 차질로 최종재 생산이 불가능해지거나 소비자가격이 수십 퍼센트 크게 오르는 경우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 뉴스1 김기남 기자
중기업 13만 곳도 신고 후 허용…"거래의존도 30% 이상이어야"
소기업보다 규모가 큰 중기업도 형식적 신고요건을 충족하면 단체협상에 대한 담합 규정 적용을 면제받는다. 공정위는 이번 제도 개편으로 국내 사업자의 1.6%에 해당하는 중기업 13만 개 사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봤다.
중기업의 경우 소기업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는 만큼 거래상 지위와 관련한 최소한의 요건을 두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단체협상에 참여하는 사업자들의 연 매출 또는 매입 합산액이 협상 상대방보다 작고, 각 참가사업자의 협상 상대방에 대한 거래의존도가 30% 이상이어야 한다.
선 국장은 "소기업보다 규모가 큰 중기업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클 수 있어 거래상 지위와 관련한 최소한의 요건을 둔 것"이라며 "상대방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는지를 형식적으로 확인해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는 협상에 참여하는 중기업들이 상대방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는지를 형식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요건이다. 거래의존도는 협상 상대방에 대한 매출 또는 매입액을 각 참가사업자의 전체 매출 또는 매입액으로 나눠 산정한다.
중기업은 대기업과 대형 중견기업을 상대로 단체협상에 나설 수 있다. 대형 중견기업의 구체적 기준은 시행령에서 정하되, 공정위는 자산총액 5000억 원 이상 기업 등을 예로 들었다.
단체협상을 하려는 중기업은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한다는 증빙서류를 갖춰 공정위에 신고해야 한다. 공정위가 형식적 요건을 확인해 신고를 수리하면 수리 즉시 담합 규정 적용이 면제되고, 효력은 3년간 유지된다.
다만 사후에 소비자 이익 침해나 경쟁 제한 우려가 상당 수준 발생하는 경우에는 향후 금지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과거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하지 않는다. 협상 참여 사업자의 합산 시장점유율이 20% 이하인 경우에는 사업자 규모와 관계없이 금지명령을 부과하지 않는다.
가격·거래조건 합의도 허용…입찰담합은 제외
허용되는 행위 범위도 넓어진다. 공정위는 교섭력 강화에 필요한 경우 협상 과정에서 수반되는 사업자 간 가격, 거래조건, 거래량, 거래지역 등에 관한 합의와 정보교환을 전면 허용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배달앱 입점상인들은 수수료와 정산주기 등 거래조건을 놓고 단체협상이나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다. 하도급기업들도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에 공동 납품거부 등 단체행동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입찰담합은 허용 범위에서 제외된다. 입찰가와 낙찰자 등은 협상이 아니라 입찰 절차를 통해 결정되는 만큼 교섭력 강화를 위한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공정위는 대기업 등이 이 제도를 회피하기 위해 입찰 절차를 악용하지 않도록 하위규정도 보강할 계획이다. 형식적 입찰 절차를 이용해 불리한 거래조건을 형성하거나 강요하는 행위는 위법으로 판단될 수 있다.
공동 납품거부 등 단체행동도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다만 보이콧으로 소비자 피해 등 중대한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임시중지 명령 등을 통해 신속히 대응하기로 했다.
선 국장은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가격이나 거래조건 등을 공동으로 정해 경제적 강자와 대등하게 협상하고, 협상 결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노조 단체행동도 적용 제외…노무제공자 조사·제재 면제
노동조합 등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도 제외된다. 그간 공정위는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이라도 사업자적 성격을 갖고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해당하면 법 위반으로 조치해 왔다.
그러나 공정위는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 삼권의 실질적 보장과 최근 판례 경향 등을 고려해 정당한 노동조합의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설립신고된 노동조합과 소속 노동자, 법원 판결이나 노동위원회 결정 등으로 지위를 인정받은 노동조합과 소속 노동자, 노무제공자의 행위는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실질심사 없이 조사와 제재가 면제된다.
보험설계사, 건설기계기사, 골프장캐디, 택배기사, 화물차주 등 산재보험 법령상 노무제공자 18개 직종의 행위도 적용 제외 대상에 포함된다. 이들에 대해서는 실질심사 없이 바로 조사와 제재가 면제된다.
공정위는 이날 국무회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공정거래법과 중소기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을 마련해 다음 달부터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선 국장은 "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이 개별적으로 대기업과 협상하면 협상력이 열위에 있어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공정거래법상 최소한 담합 규정 적용을 배제해 단체협상으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seohyun.shim@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