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인 박영훈(가명·55) 씨가 15년여 동안 집에만 있다가 세상에 나온 건 지난해다. 비장애인이었던 그는 1996년부터 2010년까지 대형 조선소 시운전용 선박의 기관실에서 일했다. 돈도 잘 벌었고, 가정까지 꾸려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영훈씨의 일상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과 흩어져 친척집에 얹혀살게 된 그는 술로 하루하루를 버텼고 몸과 정신이 모두 망가져 IQ는 50까지 떨어졌다. 영훈씨는 결국 정신질환 중증장애 판정을 받았다.
경남 거제시 연초면에 위치한 다온영농조합법인이 발달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사회적농업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서대웅 기자)
세상과 단절돼 살던 영훈씨를 밖으로 이끈 것은 사회적농장인 ‘다온영농조합’이다. 지역 사회복지사 소개로 이 농장에 발을 디뎠다. 처음엔 농장이 운영하는 복지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후엔 채용됐다.
더위가 본격 시작된 지난 6월 경남 거제에 위치한 다온영농조합에서 만난 영훈 씨는 농장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장애인들을 돕고 있었다. 어눌한 말투지만 그는 “내 아들이 서른이다. 여기 오는 장애인들 보면 다 자식 같다”며 “모두 어려움을 이겨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사회적농장은 농촌판 사회적기업이다. 2023년 제정된 농촌경제사회서비스법은 사회적농업을 ‘농업을 통해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른 취약계층에 돌봄, 치유, 교육 및 고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사회적농장도 사회연대경제 주체로서 농업 활동을 통해 창출한 수익을 취약계층에 환원한다.
지난 5월 말 기준 사회적농장은 74개 시군의 128곳이다. 이중 27곳은 사회적농장으로 지정만 받은 상태이고, 101곳이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정부는 최대 5년까지 매년 5500만원 한도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전국 농촌 장애인 등 취약계층 4436명이 사회적농장에서 돌봄 등 서비스를 제공받았다. 서비스 수혜자 10명 중 8명(80.4%)은 장애인이다.
제주 서귀포시 상효동에 위치한 푸른팜사회적협동조합 농장에서 중증장애인 직원들이 꽃을 다듬고 있다.(사진=서대웅 기자)
사회적농장이 장애인에게 특별한 건 비장애인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4~5시간의 일을 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압박감도 없다.
제주도 서쪽 마을에서 동쪽에 위치한 ‘푸른팜’으로 출퇴근하는 발달장애인 강인호(가명·51) 씨는 푸른팜에 오기 전 제주지역 한 체육관에서 청소 일을 했지만 타박 받는 일이 잦았다. 인호 씨는 “조금만 늦어도 (비장애인인 관리자가) 엄청 뭐라 했다. 우리는 비장애인이 하는 일을 따라 하기 힘들다”며 “그 사람들(관리인)은 장애인이 아니니까 (우리를) 이해 못한다”고 했다. 지난해 이곳 농장에 합류한 그는 시든 꽃을 정리하고 출품할 꽃들을 나르는 일을 한다. 그 사이 술도 끊고 혼자서 식당에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회적농장의 수가 많지는 않다. 취약계층이 참여한 농업 활동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고용까지 연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농장주들이 돌봄과 복지의 수단으로 사회적농장을 경영하는 건 이러한 배경에서다.
다온영농조합법인 양홍수 대표가 농장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서대웅 기자)
양 대표는 “지금은 장애인이 농장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병행하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직업훈련 특화 농장으로 운영해 볼까 한다”며 “장애인들이 농장을 가교로 세상에 발을 디디며 일자리까지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