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옳았지만 지금은 틀려…STO정책 궤도 수정 필요한 때

경제

이데일리,

2026년 7월 06일, 오전 05:13

[이데일리 정윤영 기자] 토큰증권(STO) 제도가 내년 2월 시행을 앞둔 가운데, 제도 설계의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는 그동안 부동산·미술품·음원·한우처럼 기존 증권 체계에 담기 어려웠던 자산을 잘게 나눠 투자하는 조각투자에 초점을 맞춰 제도를 설계해 왔다.

그러나 정작 글로벌 시장에서는 국채·주식·머니마켓펀드(MMF) 같은 전통 금융자산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STO로 자금과 인프라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사진=챗GPT)
(사진=챗GPT)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STO 제도의 출발점은 지난 2023년 2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이다. 당시 금융위는 조각투자 등 다양한 권리를 손쉽게 증권 형태로 발행·유통하고, 비정형 증권을 거래할 수 있는 소규모 장외시장을 조성하는 데 토큰증권의 의미를 뒀다. 이에 따라 국내 제도 논의도 부동산·음원·미술품·한우 등 실물자산 기반 조각투자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접근이었다. 해외에서도 조각투자 분야를 중심으로 토큰증권 발행 시도가 활발했고, 규제 샌드박스를 거쳐 성장한 국내 블록체인 기반 조각투자 서비스를 제도권 안으로 흡수할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3월 보고서에서 “토큰증권이 주식·채권 같은 정형증권 발행에도 활용될 수 있지만,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이나 투자계약증권처럼 최근 등장한 비정형 증권 발행에 우선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STO 도입을 위한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이, 글로벌 시장의 흐름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주식과 국채, MMF 등 전통 금융자산을 블록체인에서 거래하는 방향으로 시장이 빠르게 재편됐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투자은행(IB)이 주도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미국 온라인 증권사인 로빈후드는 120개국을 대상으로 토큰화 주식 서비스를 공식 출시하고 자체 블록체인인 ‘로빈후드 체인’도 공개했다. 로빈후드는 전통 금융과 탈중앙화금융의 장점을 결합하며, 기존 주식과 현물 디지털자산 거래를 넘어 토큰화 주식, 파생상품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블랙록이 2024년 선보인 토큰화 MMF ‘BUIDL’은 미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한 세계 최대 규모의 토큰화 펀드로 자리 잡았다. 프랭클린템플턴이 2021년 출시한 미국 정부 MMF ‘FOBXX’도 현재 운용자산(AUM) 2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JP모건 역시 지난해 말 토큰화 MMF ‘MONY’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 두 번째 상품인 ‘JLTXX’까지 선보였다.

주식 토큰시장도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스페이스X와 오픈AI 등 비상장 주식을 토큰 형태로 거래하는 주식 토큰 시장 규모는 올 들어서만 130% 성장했다.

이 같은 민간에서의 움직임을 감안해 시장 인프라 구축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예탁결제원(DTCC)는 이달 토큰화 증권 시범거래를 시작하고 오는 10월 정식 서비스를 예고했다. 나스닥도 내년을 목표로 블록체인 기반 주식 거래 체계를 준비 중이며, 뉴욕증권거래소(NYSE) 모회사인 인터컨티넨털익스체인지(ICE) 역시 토큰화 주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월가 관심이 이제 ‘블록체인을 전통 금융에 활용할 수 있는가’에서 ‘기존 금융시스템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접목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전통자산 토큰화가 수요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수익률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하고, 담보 활용도가 높으며, 기관 수요와도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토큰화 MMF는 단기 국채나 현금성 자산을 기초로 하는 만큼 수익 구조가 비교적 명확하다. 조각투자 상품처럼 자산 가치 평가가 쉽지 않은 구조와 달리, 국채와 환매조건부채권(RP) 등에서 발생하는 이자가 안정적 수익 기반이 된다. 여기에 24시간 거래와 빠른 결제, 담보 활용 가능성은 자본효율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 환경이 이처럼 달라지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토큰화 주식 거래를 지원하는 새로운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SEC는 디지털자산 기업이 기존 증권 규제를 모두 적용받지 않더라도 새로운 사업 모델을 시험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 면제’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반면 국내는 여전히 제도 도입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금융위는 이달 중 토큰증권 하위법규 개정안과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현재 논의는 조각투자 발행 기준과 장외거래 시장 구조 설계에 집중돼 있다. 정형 증권의 토큰화와 온체인 결제는 중장기 과제로 제시된 수준에 머물러 있어,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단기간 내 대규모 시장이 형성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심수빈 키움증권 책임연구원은 “정형증권 토큰화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과 이를 실제 시장에 안착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당초 개정안 자체가 지난 2023년 조각투자 제도화에 초점을 맞춰 설계된 만큼, 단기간 내 정형증권 토큰화까지 아우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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