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베트남농업과학원. (농림축산식품부 공동취재단)
김치와 라면, 과자, 음료를 넘어 이제는 한국의 농업기술 자체가 새로운 수출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농산물을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품종과 재배기술, 생산 시스템, 가공기술까지 해외에 이전하며 현지 농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그 중심에는 농촌진흥청의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인 KOPIA(코피아·KOrea Partnership for Innovation of Agriculture)가 있다.
지난 2009년 문을 연 KOPIA 베트남센터는 지난 17년간 한국형 농업기술을 현지에 뿌리내리며 농가 소득 증가와 농업 가치사슬 구축,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기반 마련이라는 세 가지 성과를 동시에 만들어냈다. 특히 양잠과 땅콩 분야에서는 단순 기술 이전을 넘어 지역 산업을 육성하는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업 한류의 플랫폼"…KOPIA가 만드는 기술 수출 생태계
KOPIA는 농촌진흥청이 운영하는 해외 농업기술 협력 플랫폼이다. 한국의 우수 품종과 선진 농업기술을 개도국 환경에 맞게 현지화해 보급하고, 이를 통해 생산성과 농가 소득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22개국에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베트남센터는 2009년 하노이 베트남농업과학원(VAAS)에 설립됐다.
베트남센터는 채소, 감자, 딸기, 사료작물, 참깨 등 다양한 분야 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최근에는 양잠과 땅콩 사업을 핵심 전략 분야로 육성하고 있다.
양잠 분야에서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 시범마을 사업을 통해 베트남 최초의 흰고치 생산 품종인 'VH2020'을 개발했다. 이 품종은 기존 중국산 품종보다 견사율과 생산성이 높고 고치 생산 효율도 뛰어나 생사 생산에 필요한 고치량을 13% 줄였다.
KOPIA는 옌바이성 일대 207.5ha 규모 시범단지를 조성해 555개 농가에 VH2020 품종과 뽕나무 신품종 GQ2를 보급했다. 그 결과 생산량은 32.1%, 생산액은 24.4% 증가했으며 농가 소득은 벼 재배 대비 최대 4.6배, 옥수수 대비 최대 8.3배까지 높아졌다.
성과는 정부 정책으로도 이어졌다. 베트남 옌바이성은 자체 예산을 투입해 500ha 규모 뽕밭 조성과 1000개 농가 대상 잠실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8년까지 잠종 자급률을 13%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땅콩 분야 성과도 주목된다. KOPIA는 풋마름병에 강하고 수량성이 높은 TK10과 L20 품종을 선발하고 종자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응에안성 60ha 시범단지에는 500개 농가가 참여했으며, 한국형 멀칭 기술과 재배법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였다.
기술 보급 이후 땅콩 재배 면적은 750ha에서 1330ha로 확대했고 생산액은 56%, 생산량은 53% 증가했다. 현재는 종자 생산에서 가공, 판매까지 이어지는 가치사슬 구축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베트남 최초 흰고치 생산품종인 'VH2020(KOPIA 사업 개발 품종)' (농림축산식품부 공동취재단 제공)
기술 이전 넘어 산업 육성…현지 기업 성장의 발판 되다
KOPIA 사업은 단순한 연구개발에 머물지 않는다. 현지 기업과 협동조합이 사업을 확장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대표 사례가 땅콩 가공산업이다. KOPIA 베트남센터는 북중부농업연구소(ASINCV), 지역 협동조합, 민간기업과 협력해 땅콩버터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지난해 4월에는 응에안성에서 땅콩 가치사슬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동아 VINA㈜와 지역협동조합, 북중부농업연구소, KOPIA 베트남센터가 참여한 이 협약은 KOPIA 사업지에서 생산한 땅콩을 원료로 가공해 판매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동아 VINA㈜는 한국기업 크레이지피넛과 베트남 동아기업이 각각 50% 지분을 가진 합작 설립회사로 지난해 2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KOPIA 사업지에서 생산된 L20 품종 등 우량 땅콩의 가공 적합성을 확인한 뒤 올해 약 30톤을 구매해 땅콩버터 생산에 활용하고 있다.
현지 기업 관계자는 "KOPIA가 개발한 품종은 생산성이 높고 품질이 균일해 가공산업과 연계하기에 적합하다"며 "안정적인 원료 공급망 확보는 물론 농가와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양잠 분야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실크 생산에 머물렀던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실크비누, 치약, 화장품, 건강식품, 오디 음료 등 다양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양잠 관광단지와 체험형 테마파크 조성까지 구상되고 있어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된다.
조명래 KOPIA 베트남센터장(오른쪽)이 공동취재단에게 현지에서의 사업 현황과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공동취재단 제공)
"K-푸드의 다음 단계는 K-농업기술"…지속가능한 협력 모델로 진화
조명래 KOPIA 베트남센터 소장은 "과거에는 농업 분야 국제협력이 단순 원조 성격이 강했다면 이제는 기술과 산업을 함께 키우는 상생 모델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KOPIA는 한국의 우수한 품종과 기술을 현지에 맞게 적용해 농가 소득을 높이는 동시에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기반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K-푸드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지금, K-농업기술 역시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베트남은 젊은 인구와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갖춘 시장"이라며 "양잠과 땅콩 사업처럼 품종 개발에서 생산, 가공, 유통까지 연결되는 가치사슬 모델을 확대해 농업 분야 한류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식품 수출을 넘어 기술과 산업 생태계를 함께 수출하는 시대. KOPIA가 베트남에서 만들어낸 변화는 K-푸드 플러스(K-Food+) 전략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euni1219@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