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릴땐 빠르게 내릴땐 버티기'…'전분당 가격 담합' 4개사 과징금 7476억

경제

뉴스1,

2026년 7월 07일, 오후 12:00

남동일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전분 및 전분당 가격담합 사건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4개 전분 및 전분당 제조·판매사업자들이 7년 이상 B2B 거래에서의 공급가격을 합의하고 이를 실행한 행위에 대해서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등을 포함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7,476억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2026.7.7/뉴스1 김기남 기자

옥수수 가격이 오를 때는 전분·전분당 판매가격을 빠르게 올리고, 원가가 내릴 때는 가격 인하를 최대한 늦추는 방식으로 7년 넘게 가격을 담합한 국내 전분·전분당 제조사 4곳이 7400억 원이 넘는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이번 제재는 역대 담합 사건 중 최대 규모다. 기업 1곳당 평균 과징금은 약 1896억 원이다.

이들 업체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민경제 전반이 어려운 시기에도 원가 상승 부담을 거래처에 넘기고, 원가 하락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는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키운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대상, 사조씨피케이, 삼양사, 씨제이제일제당 등 4개 전분·전분당 제조·판매사업자에 총 7475억 78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7일 밝혔다.

업체별 과징금은 △대상(2341억 4100만 원) △삼양사(2103억 4000만 원) △사조씨피케이(2001억 3200만 원) △씨제이제일제당(1029억 6500만 원)이다.

이번 과징금은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서 부과한 과징금 중 역대 최대 규모다. 공정위는 4개 사에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과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 향후 3년간 반기별 가격 변동 내역 보고명령 등 시정명령도 내렸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분당은 제과·음료·빙과·소스 등 식품뿐 아니라 제지·철강 등 다양한 제조업 분야의 원재료로 사용된다"며 "전분당 가격이 인상될 경우 전후방 산업에 대한 연쇄적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최근 공정위에서 조치한 설탕·밀가루·인쇄용지 담합에 이어 국민 체감도가 높은 민생 분야에서 독과점 사업자들의 담합을 통한 부당한 가격 인상을 엄정 제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4개 전분사, 2018년 5월부터 7년 5개월간 13차례 가격 담합
이들 사업자는 2018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7년 5개월 동안 총 13차례에 걸쳐 전분·전분당 판매가격의 인상·인하 폭과 시기 등을 합의했다.

전분·전분당은 옥수수 가격이 제조원가의 60~70%를 차지한다. 4개 사는 옥수수 가격이 오르는 시기에는 원가 상승분을 신속히 거래처에 전가하기 위해 8차례 판매가격 인상을 합의하고, 이를 전체 B2B 거래처를 대상으로 실행했다.

반대로 옥수수 가격이 내리는 시기에는 거래처의 가격 인하 요구에 대응해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인하 시기를 늦추기로 5차례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대형 실수요처에 대해서는 일부 가격을 내리고, 소규모 실수요처와 대리점에는 기존 가격을 최대한 유지해 이윤을 극대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4개 전분사는 국내 B2B 전분 시장에서 95.7%, 전분당 시장에서 86.4%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전분당 제품의 품질이 유사하고 규격이 표준화돼 가격이 주요 경쟁요소인 시장 구조를 이용해 담합을 벌였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남 부위원장은 소비자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전분과 전분당 거래는 90% 이상이 B2B 거래"라며 "직접적으로 소비자에게 미치는 가격보다는 거래 과정에서 기업들에게 담합 효과가 바로 일어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2024.11.12 © 뉴스1 김기남 기자

공문 발송일·가격 근거까지 합의…우체국 동행해 이행 감시
4개 전분사는 가격 변경 폭과 시기뿐 아니라 거래처에 제시할 가격 변경 근거까지 구체적으로 합의했다.

임원급 모임에서는 목표가격과 적용 시기 등을 개략적으로 정했고, 팀장급 모임에서는 거래처에 제시할 환율·원료가격 등 원가 요인, 품목별 목표 인상 금액, 인상 시점, 공문 발송 순서와 일자 등을 세부적으로 조율했다.

이들은 품목별 목표가격을 정한 뒤 각 회사가 이보다 높은 금액을 순차적으로 거래처에 통보해 거래처가 목표가격을 최대한 받아들이도록 압박·유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합의 이후에는 이행 여부도 철저하게 점검했다. 각 회사가 실수요처에 공문을 발송하기로 한 날짜에 상대방 회사를 방문해 공문에 품목별 인상 폭과 인상 시기, 수신처 주소 등이 합의 내용대로 기재됐는지 확인했다. 실제 공문 발송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우체국까지 동행한 사례도 있었다.

남 부위원장은 "사업자들은 합의 이후에는 합의 이행 여부를 매우 철저하게 점검했다"며 "공문 발송이 예정된 일자에 서로 상대방 회사를 방문해 공문에 합의 내용이 정확히 기재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우체국까지 동행해 실제 공문 발송 여부도 서로 감시했다"고 설명했다.

가격 협상 과정에서는 거래처별로 납품 비중이 가장 높은 전분사가 이른바 '주관사' 역할을 맡아 협상을 주도했다. 다른 전분사들은 주관사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거래처를 함께 설득하는 방식으로 목표가격이 관철되도록 지원했다.

가격 최대 73% 인상…소비자 물가 부담으로 전가
공정위 조사 결과 전분사들은 담합을 통해 옥수수 가격 상승기에는 판매가격을 빠르게 올리고, 하락기에는 가격 인하를 최대한 지연했다.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국제 옥수수 가격이 급등하던 시기에는 담합을 시작한 2018년 5월과 비교해 관련 제품 판매가격을 최대 73%까지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전분사들은 옥수수 가격 상승기에도 영업이익 하락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옥수수 가격이 하락한 시기에는 원가 인하 폭보다 판매가격 인하 폭을 줄여 가격 인하에도 영업이익이 개선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이 같은 원가 부담이 실수요처와 대리점, 나아가 최종 소비자에 대한 물가 인상 요인으로 전가됐다고 판단했다.

전분과 전분당은 과자, 제빵, 음료, 주류, 소스 등 식료품의 주요 원재료다. 전분은 제지, 철강, 건축자재, 생활용품 등 산업 분야에서도 쓰인다.

전분의 산업용 비중은 64%, 식품용 비중은 36% 수준이다. 전분당은 식품용으로만 쓰인다.

정부는 전분·전분당이 국민 물가와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2021년 4월부터 매년 200만 톤 안팎의 가공용 옥수수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해 왔다.

"담합 전 경쟁 회복 수준으로 가격 재결정…3년간 가격 변동 내용 보고"
공정위는 이번 사건에서 단순한 금지명령을 넘어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을 부과했다.

4개 전분사는 국내에서 판매하는 전분·전분당 제품 가격을 담합 전 경쟁을 회복하는 수준으로 각자 다시 정해야 한다. 또 향후 3년간 반기마다 가격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는 이번 공동행위가 7년 5개월 동안 장기간 관행처럼 지속된 점, 국내 전분당 시장에서 20년 넘게 4개 사의 과점체제가 유지돼 담합 재발 가능성이 큰 점, 마지막 합의 가격의 영향이 아직 사라졌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남 부위원장은 "공정위는 앞으로도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담합에 대한 감시를 지속해서 강화하겠다"며 "적발될 경우 예외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seohyun.sh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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